대학생 페미니스트 단체 ‘유니브페미’가 홍대입구역 버스정류장에 게시하려던 광고. 유니브페미 제공
텔레그램 엔(n)번방 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규탄하려던 대학생들의 옥외광고가 지방자치단체와 관리업체의 ‘눈치보기’ 속에 심의조차 거치지 않고 무산됐다. ‘성착취범죄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라’는 보편적 인권에 대한 광고임에도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학생 페미니즘 단체 ‘유니브페미’는 12일 “유니브페미의 버스정류장 광고가 성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심의조차 거부됐다”고 밝혔다. 유니브페미 쪽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들은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버스정류장에 엔번방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규탄하는 내용의 광고를 기획했다. “나는 피해자의 신상이나 가해자의 서사가 궁금하지 않습니다”라는 원론적인 구호가 적힌 광고지만 지난 7일 이 단체는 케이티(KT)의 버스정류장 광고대행사로부터 “광고 사업권을 가진 케이티가 광고 게시를 불허했다”는 통보를 들었다.
버스정류장 등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옥외광고물은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지자체의 심의를 거쳐 게시가 결정된다. 이번 광고의 경우엔 지자체의 심의가 이뤄지기도 전에 게시가 무산됐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노서영 유니브페미 대표는 “대행사 쪽이 ‘광고에 대한 민원 전화가 한 통이라도 오면 환불 없이 광고를 내려야 한다’고 했다. 심의를 받기도 전부터 광고에 대해 지자체와 대행사 모두 껄끄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케이티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리가 광고사업권을 가지고 있는 건 맞지만, 모든 작업은 대행사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대행사가 지자체에 정식으로 심의를 요청하기 전에 광고 시안에 대해 구두로 질의하니 구청 쪽에서 ‘광고 집행이 어렵겠다’고 말한 걸로 안다”고 전했다. 마포구 관계자 역시 “특정 광고라서가 아니라 보통 공공시설물 광고에 대해서는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 사람들마다 불편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른데 특히 공공시설물 광고에는 워낙 많은 민원이 들어온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엔번방 사건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자 입길에 오르는 걸 부담스러워한 지자체와 광고 관리업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통상적인 심의절차에조차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서영 대표는 “엔번방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시기에 반드시 필요한 광고인데,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지자체, 케이티, 대행사 모두 광고 게시에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성평등한 광고대행사, 지자체를 찾아 이 광고를 꼭 게시하겠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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