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적으로 촬영·유통한 혐의를 받는 가수 정준영이 2019년 3월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법원이 집단 성폭행 혐의를 받는 가수 최종훈(30)씨와 정준영(31)씨에게 각각 ‘피해자 합의’와 ‘진지한 반성’을 이유로 1심보다 형량을 대폭 깎아준 것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성과 합의라는 감경사유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피해자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서울고등법원(재판장 윤종구)은 정씨에게 1심보다 1년 줄어든 징역 5년을 선고했고 최씨에게는 1심 형량의 절반인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에 대해 “공소사실은 부인하지만 본인의 행위를 반성하는 ‘취지’의 자료를 제출”했다고 했고, 최씨의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는 유리한 사정이지만 양형기준상 ‘진지한 반성’의 요건에는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반성’해서, 최씨는 ‘합의’해서 형을 감경받은 것이다.
형사사건에서 합의와 반성은 중요한 감경사유로 작용한다. 오정일 경북대 교수(행정학)의 ‘양형기준의 효과에 관한 실증적 연구’(2018) 논문을 보면, 2003~2016년 살인·강간·강도·사기·횡령·절도·위증·무고·공무집행방해 등 9개 범죄의 1심 판결에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합의가 있을 경우’에는 14개월, ‘범행을 인정했을 경우’에는 5개월가량 형량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강력범죄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는 형량을 낮추는 데 중요한 양형 인자로 작용했는데, 살인 범죄의 피고인이 피해자 가족과 합의하면 형량이 40개월 줄었다. 오 교수는 이 논문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형량이 1년 이상 감경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성계에선 특히 성범죄의 경우 합의나 반성 여부를 피해자의 관점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반성과 합의가 형량에 영향을 미칠 것을 아는 가해자들이 대필 반성문이나 보여주기식 기부로 ‘꼼수 반성’을 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쫓아다니며 합의를 종용하기도 한다”며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처벌 의사가 있는지, 범죄로 인한 피해가 현재 얼마나 복구가 됐는지 등 피해자의 목소리에 재판부가 귀를 기울여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와의 합의나 진지한 반성이 감형의 주요인인 만큼 이를 정밀하고 엄격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게 최근의 사회적 목소리다. 반성문이나 합의서 제출 여부로 판단할 게 아니라 질적 판단을 하도록 양형기준을 구체화하고, 일선 판사들도 적극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성범죄 양형기준표에는 진지한 반성이 감경요소로 제시돼 있을 뿐, 어떤 행위가 진지한 반성에 포함되는지 등을 정의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한 판사도 “피해자와의 합의나 피고인 반성 등에 있어 피해자의 입장은 어떤지, 피해자가 어떤 맥락에서 합의했는지 등에 대해 법원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연서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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