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가 지난 1월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위원장 내정까지의 경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증거인멸을 주도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TF) 임원이 다시 현업에 복귀해 계열사 경영에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이 “부끄럽다”며 시정을 약속했다.
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열린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회의에서 이 사장은 백상현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 상무의 경영 복귀에 대해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유감의 뜻을 밝히고 “내부에 가서 그런 부분들을 확실히 이야기하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운영 담당 임원으로 증거인멸을 주도했던 백 상무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임직원들에게 다시 업무지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달 13일 <한겨레> 보도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
[단독] 삼바 수사 끝나기도 전 ‘증거인멸 주도자’는 업무 복귀) 백 상무는 2018년 5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삼성바이오와 에피스의 임직원들에게 내부자료 삭제 등을 지시한 혐의(증거인멸·은닉교사)로 구속기소됐다. 1심 판결문을 보면, 백 상무는 검찰 수사에 대비해 삼성바이오와 에피스 임원들에게 자료 삭제를 지시한 뒤 수시로 보고받았고, 삼성바이오 공장과 에피스 사옥 등을 직접 찾아가 임직원 60여명의 휴대전화에서 ‘제이와이(JY·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칭)·부회장·콜옵션’ 등의 열쇳말이 들어간 자료들을 삭제하도록 했다. 법원은 백 상무의 혐의를 인정해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집행유예로 풀려난 백 상무는 올해 초부터 다시 삼성바이오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백 상무가 다른 임원의 전자메일을 빌려 은밀한 방법으로 내리는 지시가 삼성바이오 재경팀을 통해 다른 직원들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다. 반면 백 상무와 함께 기소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임직원들은 본래 직책에서 강등되는 등 징계성 인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분식회계 관련 증거인멸을 지시한 사업지원티에프 임원은 그대로 남고, 그 지시를 이행한 계열사 직원들만 ‘꼬리 자르기’식 징계를 당한 것이다.
김지형 준감위원장은 4일 준감위 회의에 <한겨레> 보도 스크랩을 준비해오는 등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의견을 나눴다. 위원들은 “미국 같은 나라는 실형을 산 임원들에게 ‘일도양단’의 조처를 하는데 우리나라도 그런 원칙이 정립돼야 한다”는 뜻을 모았다고 한다. 한 준감위원은 “과거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이 유죄 판결을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이사 재선임안이 올라오자 외국 주주들이 ’상장법인의 이사로 부적합하다’고 지적했다”며 “이렇듯 임직원들에게 형사적인 문제가 생길 때 어떻게 대응할지 틀을 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삼성전자 내부위원인 이 사장이 반성과 시정을 약속한 것이다.
다만 이날 구체적인 시정 방안이나 원칙 수립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29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19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서 “임원이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돼 형사재판이 진행되는 경우에 해당 재판 결과가 확정되면 해당 임원에 대한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며 “재판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기업가치 훼손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필요한 경우 상당한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적시한 바 있다.
한편, 준감위에서 유일한 삼성 내부위원이었던 이인용 사장은 사임 뜻을 밝혔다. 준감위는 “이인용 위원은 삼성전자의 사회적 관계(CR) 담당으로, 최근 위원회 권고를 계기로 회사가 사회 각계와 소통을 대폭 확대함에 따라 회사와 위원회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부득이 사임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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