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을 경우에도 아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상
출생신고를 보장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이 아동의 ’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중국 국적 여성과의 혼인신고가 불가능해 아이 출생신고를 거부당한 ㄱ씨가 미혼부 자격으로 출생신고를 하게 해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9일 밝혔다.
ㄱ씨는 중국 국적의 여성 ㄴ씨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2018년 9월 충북 청주의 한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주민센터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혼인신고를 먼저 해야 하는데 난민인 ㄴ씨는 혼인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을 수 없었다. 2009년 중국 당국으로부터 여권갱신이 불허되고 일본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발급받은 여행증명서로 국내에 들어와 ㄱ씨를 만났기 때문이다.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ㄱ씨는 미혼부의 신분으로 가정법원에 아이의 출생신고를 허가해달라고 신청했지만
법원은 아이 엄마의 인적 사항(성명·등록기준지·주민등록번호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에 미혼부가 혼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사랑이법’(가족관계등록법 57조 2항)을 엄격하게 해석했다. “ㄴ씨가 외국인이지만 출생증명서에 성명, 출생연월일, 국적이 기재돼있고 그 내용이 출생증명서의 ‘출생아의 모’란의 기재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에 이 사건 조항에 규정된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엄마가 외국인으로서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도 미혼부 혼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해석해야 한다며 ㄱ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에 대하여 국가가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 아동으로부터 사회적 신분을 취득할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가지고, 이러한 권리는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로서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가 되는 기본권이므로 법률로써도 이를 침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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