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검사에서 ‘자살 예측’ 판정을 받은 부사관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국가가 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군 부사관 최아무개씨 유족들이 ‘책임자들이 적응에 필요한 보호 및 관리를 소홀히 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최 씨는 2012년 9월, 해군 하사로 임관한 지 닷새 만에 인성검사를 통해 ‘부적응, 관심, 자살 예측’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최씨의 적응도는 ‘매우 낮음’으로 평가됐고 “구체적인 면담이 필요하다”는 판정도 나왔다. 그러나 상관들은 인성검사가 요구하는 추가적인 조처를 실행하지 않았다. 생활관 당직소대장인 ㄱ씨는 최씨와 면담 뒤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해 검사 결과를 누구에게도 통보하지 않았고, 담임 교관인 ㄴ씨도 두 차례 면담을 통해 “문제가 없다”고 기록했다.
2013년 1월 양만춘함으로 전입한 최씨는 새로 실시한 인성검사에서 ‘특이사항 없음’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음탐사 기량 경연대회 모의평가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해 상관한테서 질책을 받는 등 조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양만춘함 안에서 목을 매어 사망했다. 이에 최씨 유족들은 “체계적인 보호와 관리를 받아야 했지만, 담당 소대장은 형식적인 면담만을 실시하고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는 등 최씨에 대한 보호, 관리를 소홀히 했다”며 2억354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책임자들이 최씨에게 세심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망에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책임 있는 지휘관 등이 인성검사 결과를 반영해 최씨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취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또 최씨가 인성검사에서 추정할 수 있는 성향이나 기질로 인해 통상적인 업무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며 “인성검사 결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그 결과를 활용하여 후속조치를 할 직무상 의무를 과실로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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