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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코로나에 취업문·귀국길 막힌 이주민 “긴급 생계지원을”

등록 2020-06-17 04:59수정 2020-06-17 10:48

정부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제외…장기체류 144만명 사각지대에
“코로나 탓 실직하고 귀국도 못해”
부천·안산 등 일부 지자체만 지원
시민·종교단체 도움에 겨우 기대
“취약층인 이주민 생계지원 시급”
이주공동행동, 난민인권네트워크, 이주인권연대 등 이주민 단체 회원들이 서울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을 이주민에게도 평등하게 지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이주공동행동, 난민인권네트워크, 이주인권연대 등 이주민 단체 회원들이 서울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을 이주민에게도 평등하게 지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류반투안(39)의 손가락은 굽혀지지 않는다. 지난해 4월 김포의 한 조명공장에서 안전교육도 없이 날카로운 작업기계를 다루는 일에 투입된 그는 출근 첫날 손가락 네개를 잃었다. 봉합수술을 했지만 검지와 약지가 바뀌는 의료사고까지 당했다.

일곱차례의 재수술 뒤에도 그의 손은 말을 듣지 않는다. 성치 않은 손으로 단기 일자리라도 알아보려는 류반투안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취업문이 닫혔고, 그다음엔 국경이 닫혔다. 고향에 돌아가려 해도 류반투안은 베트남 정부의 국경 폐쇄 조처로 발이 묶여 갈 수도 없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교회에서 살며 근근이 생계를 잇는 그는 “한국 정부가 수입이 없는 이주민들에 대해서도 긴급 생계지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이 5개월여 동안 지속되면서 이주민들의 고통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기댈 곳 없이 타향살이를 하는 이주민에게 코로나19 사태는 더욱 치명적이다. 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선 결혼이민자, 영주권자 등을 제외한 외국인은 빠졌다. 장기체류 이주민 173만명 중 144만명가량이 재난 사각지대에 몰린 것이다.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서는 건 시민사회단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아름다운재단과 바보의나눔으로부터 1억원을 지원받아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이주민 218가구에 ‘긴급생계비’ 각 30만원과 마스크 등의 방역물품을 전달했다. 지난 4월1일부터 열흘 동안 센터가 접수한 긴급생계비 신청서 315건을 <한겨레>가 분석해보니, 코로나19로 벼랑 끝에 내몰린 이주민의 삶이 또렷이 드러났다.

신청자 315명 중 123명(39.0%)이 코로나19로 신청자 본인이나 가족이 일자리를 잃었다. 30명(9.5%)은 일이 줄어 수입이 감소했고 11명(3.5%)은 임금체불을 겪었다. 긴급생계비를 신청한 이주민 중 질병·장애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99명(31.4%)이고, 이 가운데 류반투안처럼 한국에서 ‘산업재해’를 입은 사람은 11명(3.5%)이다.

이집트 출신 난민신청자 자이드(가명·34)에게도 ‘코로나19’보다 더욱 두려운 건 삶 그 자체다. 고국에서의 종교박해를 피해 2016년 12월 가족과 함께 한국에 온 그는 전북 익산의 한 농장에서 채소 포장 일을 하며 아내와 어린 자녀 둘의 생계를 꾸려왔다. 그러나 지난해 거친 육체노동 때문에 무릎과 허리 수술을 받아야 했다.

교회와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생활했지만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된 뒤 자이드 가족을 향한 구호의 손길은 뜸해졌다. 자이드는 “두달치 월세(80만원)가 밀렸고, 음식이라곤 조금 남은 쌀뿐이다. 이제 곧 집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정폭력 피해 등으로 이혼한 결혼이주여성들도 사각지대에 서 있다. 긴급생계비 여성 신청자 209명 중 78명(37.3%)은 ‘한부모’ 가정에서 혼자 자녀를 키우고 있다. 이들 중 24명(11.5%)이 가정폭력 피해를 당하고 이혼했다고 답했다. 2년 전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뒤 아홉살 난 딸을 혼자 키워온 베트남 출신 팜티프엉(가명·31)도 코로나19 확산 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팜티프엉은 인천의 한 고기공장에서 포장일을 하며 한달에 170만원을 받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지만 코로나19로 일거리가 줄었다. 급여가 100만원으로 쪼그라들자, 지인에게 돈을 빌려서 살아가고 있다. 빚은 300만원까지 불어난 상태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기도 부천시와 안산시 등 일부 지자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마저 이주민을 재난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일정 조건을 갖춘 단기이주노동자나 이주민에게도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독일, 포르투갈, 캐나다 등과 대조적이다. 일본에서도 3개월 이상 등록 이주민을 포함한 전 국민에게 1인당 10만엔(한화 114만원가량)을 지급했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더라도 경제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정부가 취약계층인 이주민에 대한 긴급생계지원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재구 이재호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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