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한 회원이 지난 24일 대전엠비시(MBC) 앞에서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공동대책위 제공.
남성 아나운서는 정규직 위주로, 여성 아나운서는 대부분 프리랜서나 계약직 형태로 채용하는 등 성차별 관행을 이어온 <대전MBC>(엠비시)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여성 비정규직 아나운서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했다. 지난 4월 인권위가 <대전엠비시>에 성차별 시정 권고를 내린 뒤 구체적 권고안이 나온 건 처음이다.
17일 인권위는 “<대전 엠비시>는 ‘여성은 나이가 들면 활용 가치가 떨어진다’는 인식 하에서 성차별적 채용 및 고용 환경을 유지해왔다”며 정규직 전환 등 성평등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지난해 6월 유지은(34)씨 등 <대전 엠비시> 여성 비정규직 아나운서 2명은 “정규직 아나운서로 남성을,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여성을 채용하고 임금, 연차휴가 등에서 여성 비정규직 아나운서를 불리하게 대우하고 있다”며 인권위에 <대전엠비시>에 대한 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를 보면, 1997년부터 지난해 6월 진정이 접수되기까지 <대전 엠비시>에 채용된 계약직‧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모두 여성이었던 반면, 같은 기간 채용된 정규직 아나운서는 모두 남성이었다. 여성 아나운서가 필요할 땐 계약직 및 프리랜서로, 남성 아나운서가 필요할 땐 정규직으로 채용 공고도 달리 냈다. 신원식 <대전 엠비시> 대표이사는 “모집요강 등에서 성별을 제한한 바 없다. 남성 아나운서는 실력으로 최종합격한 것이며 유 아나운서 등의 주장은 오히려 공정한 채용시스템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진정을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차별 채용은 회사 내 성차별 인식을 더욱 견고히 만들었다. 진정인들은 동료들로부터 “(정규직은) 본래 남성의 자리”, “남자는 늙어도 중후한 맛이 있는데 여자는 늘 예뻐야 되기 떄문에…” 등의 성차별 발언을 여러 차례 들어야 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뒤 방송 출연 프로그램‧시간이 줄어드는 등 불이익을 겪기도 했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1년여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당연한 결과가 나왔다”며 인권위 권고를 반기면서도 “회사가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쪽은 ‘인권위 권고는 구속력이 없으니 듣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등 아무런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며 “권고가 제대로 이행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엠비시> 본사에도 전체 본사‧계열사의 채용 현황을 조사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엠비시> 전체 지역 계열사 16곳에서 남성 아나운서는 82.9%가 정규직인 반면 여성 정규직은 25%에 불과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이제는 <대전 엠비시>의 전향적인 수용과 이행이 중요하다”며 “<엠비시> 역시 공영방송으로서 본사 차원의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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