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일자리 대물림”vs“유족 배려”...산재 사망자 자녀 특채 놓고 대법원서 격론

등록 2020-06-17 20:20수정 2020-06-18 15:20

기아차, 단체협약 효력 공개변론
1·2심 “정의관념에 반해” 원고 패소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사망 근로자 유족 특채'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설치된 가림막과 마스크가 눈길을 끈다. 연합뉴스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사망 근로자 유족 특채'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설치된 가림막과 마스크가 눈길을 끈다. 연합뉴스
“2019년 청년 체감 실업률이 23%다. 그런데 단체 협약 내 고용세습 조항에 따라 회사가 산업 재해로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에 대해 취업을 보장하는 것은 ‘부모 찬스’를 사용하는 것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것이다.”(기아자동차 소송대리인)

“신규 채용 인원의 0.5%에도 미치지 못하는 산재사망자 유족의 특별채용을 일자리 세습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특별채용은 산업 재해로 파탄 난 가정에 대한 사회적 배려이기에 청년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아니다” (유족 소송대리인)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자녀를 회사가 특별채용하는 노동조합의 단체 협약은 사회 통념상 타당한 것인가. 1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는 이를 둘러싼 공개변론이 열렸다.

사건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아차에서 근무하던 이아무개씨는 금형 세척작업 중 벤젠에 노출돼 그해 7월 백혈병으로 숨졌다. 이씨 유족은 단체협약을 근거로 성인이 된 큰딸을 채용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기아차는 이를 거부했다. 현대차에서도 유사한 소송이 있었지만 울산지법에서 특채 조항을 무효로 판단했고 유족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된 판결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유족은 “조합원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할 경우 직계 가족 1인을 특별채용한다”는 단체협약을 이행하라며 소송을 냈다. 1·2심 모두 “사용자 고용계약의 자유를 제한하고,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해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에 반한다”며 특별채용 조항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산재 유족 특별채용이 청년 취업난 속 공서양속(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유족은 가장의 산재 사망 뒤 처한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족 대리인은 “헌법에서 말하는 평등은 일체의 차별 금지가 아닌 상대적 평등”이라며 “장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이지 타인의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고용세습’이라고 규정한 기아차 대리인은 “(해당 조항은) 회사가 고용세습을 수용하도록 강제하고 있어 헌법상 기본권인 채용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이러한 조항을 무효로 선언해 청년실업자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맞섰다.

특별채용 규모를 놓고서도 양쪽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놨다. 유족 대리인은 2008~2019년 기아차 신규채용 인원 3548명 중 산재 유족 비중이 0.5%(16명) 미만인 점을 들며 “(채용 인원이) 극히 소수라 채용에서의 평등이나 공정성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지만, 기아차 쪽은 “경쟁률이 300대 1, 심할 때는 740대 1까지 간다. 대상인원(산재 유족)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채용에 관한 원칙을 세우는 문제”라고 맞받았다.

대법관들은 25년간 유지한 특별채용 조항의 효력을 놓고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고 나선 기아차의 태도를 지적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박상옥 대법관은 “단체협약을 놓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면 법적 분쟁보다는 노동위원회에 해석을 요청할 수 있는 방안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고 김선수 대법관은 “기아차와 같이 큰 대기업이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마다 법률적 검토를 했을 텐데 (특별채용의) 위법성도 걸러내지 못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에 기아차 대리인은 “과거 유사한 사안에 대해 법원이 (해당 조항이)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후로 해당 조항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