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산재 사망 근로자 유족 특채'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설치된 가림막과 마스크가 눈길을 끈다. 연합뉴스
“사랑하는 아버지가 회사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했는데, (유족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양질의 일자리 특혜’라는 비난을 받아야 합니까. 유족이 가졌을 좌절감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지난 17일 공개변론이 열린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는 단체협약이 무효인지를 놓고 벌어진 공방을 지켜본 김선수 대법관이 마지막 질문을 던지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유족 입장에서 잠 못 이루면서 생각해봤다”고도 했다. 재야 법조인 시절 노동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던 경력에서 나온 소회였다.
기아자동차에서 금형 세척 작업 중 벤젠에 노출돼 2010년 7월 백혈병으로 숨진 이아무개씨의 유족이 기아차를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유족은 단체협약의 ‘조합원 자녀 특별채용’ 조항에 따라 성인이 된 큰딸의 채용을 요구했지만 기아차는 거절했다. 현대차에서 있었던 유사한 소송에서 울산지법이 특채 조항을 무효로 판단했고 유족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된 판결에 따른 것이었다. 앞서 1·2심 재판부도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해 우리 사회의 정의 관념에 반한다”며 기아차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도 기아차 쪽은 “부모의 조합원 지위로 인한 특별채용은 본인의 노력과 무관한 사회적 세습”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 대법관은 “부모가 산재로 사망했다는 게 유족의 사회적 신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기업 사주 자녀의 부와 경영권 세습이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적 특혜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특별채용 단체협약 탓에 “사용자에게 주어진 채용의 자유가 침해당했다”는 주장에는 “국가가 채용을 강제했다면 채용의 자유를 침해한 게 맞지만, 기아차가 스스로 (노동조합과 함께)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니 채용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청년 실업자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는 기아차 쪽의 주장에 김 대법관은 당부의 말을 건넸다. “회사가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청년 취업자들의 눈물을 닦아준다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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