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19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이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신정권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돼 유죄 확정 판결을 받지 않고 면소 판단을 받았더라도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이 판단이 확정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의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은 41년 만에 재심이 열린다.
서울고법 형사20부(재판장 강영수)는 김 이사장이 재심청구 기각 결정에 불복해 낸 즉시항고에서 “원심 결정을 취소하고 재심을 개시한다”고 21일 밝혔다.
김 이사장은 1979년 6월 당시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이던 와이에이치(YH) 여공들을 경찰이 강제 해산시킨 것과 관련해 백서를 제작·배포한 혐의(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됨에 따라 면소 판결을 받았다. 면소는 ‘범죄 후 법령 개폐로 형이 폐지되었을 때’와 같이 공소권이 소멸해 실제 심리에 들어가지 않고 형사절차를 끝내는 것이다.
앞서 원심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건에 한해 재심 청구를 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조항(420조)을 근거로 김 이사장 사건은 재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김 이사장이 제기한 즉시항고를 받아들이며 “당초부터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 위반으로 기소돼 면소 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재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를 위헌·무효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성이 명백한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공소사실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사람은 국가가 그 권리와 명예를 회복해줄 필요가 있다. 법원으로서는 무죄판결을 선고해 그 사람의 행위가 범죄가 아님을 선언해주고, 명예의 실질적 회복을 위해 권리구제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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