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초대 회장.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초대회장을 지낸 임기란씨가 30일 낮 12시45분께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참사랑요양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
‘거리의 어머니’. 사람들이 고인을 부르던 이름이다. 1930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한 그는 2남3녀의 자녀를 둔 한 가정의 어머니였다. 고인이 민주화운동에 눈을 뜬 건 1984년이다. 막내아들 박신철씨가 전두환 정권 퇴진을 주장하며 민정당 가락동연수원 점거 농성을 벌이다 구속된 뒤 구치소 면회를 가면서 같은 처지의 어머니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1985년 민가협이 결성된 뒤 이듬해 86년 첫 총회에서 고인은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후 네차례 민가협 상임의장을 맡으며 병상에 눕기 전까지 27년간 민가협과 함께 걸어왔다. 1987년 이한열이 숨졌을 때는 장지인 광주 망월동까지 따라가 시위대를 응원했고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대학생 권인숙을 고문한 경찰 문귀동씨 재판 때는 밤새 100인분의 국밥을 준비해 방청객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민가협은 ‘내 아들딸을 살리는 모임’에서 ‘대한민국의 아들딸을 살리는 모임’으로 우뚝 섰다. 1993년부터는 ‘고난 속의 희망’을 상징하는 보라색 수건을 두르고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목요집회’를 이어왔다. ‘민가협’ 하면 ‘임기란 어머님’이라고 할 정도로 민가협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고, 그가 두르던 보라색 수건은 민가협의 상징이 되었다.
한평생 “양심수 석방”을 외쳐온 고인은 민가협뿐 아니라 다른 인권운동가들에게도 든든한 바람벽이었다. 반전·평화단체인 ‘전쟁없는세상’은 이날 “지금보다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인식이 훨씬 좋지 않던 2000년대 초반, 임기란 선생님과 민가협은 온갖 욕을 다 듣고 손가락질당하던 병역거부자들을 앞장서서 옹호해주었다”며 추모했다. 2017년에는 제23회 불교인권상을 받았다.
유족은 자녀 현숙·명숙·혜영·성철·신철씨와 사위 이재현 배철수씨, 며느리 장은영·이선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이며 발인은 2일 오전 10시 예정이다. (02)3779-1526.
강재구 기자
j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