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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집도 학교도…발붙일 곳 없는 ‘10대 성소수자’

등록 2020-07-02 04:59

청소년 지원센터 ‘띵동’ 5년 상담사례 보니
가정에선 정신병원행 압박, 학교에선 혐오·괴롭힘
성 정체성 이유로 가족 갈등 촉발
“부모님의 폭력·감금·학대 당해” 32%
학교에 가면 “동성애자 왔다” 조롱
트랜스젠더 25%가 “학교 그만뒀다”
“자립·탈가정 고민” 상담 비중 높지만
청소년 쉼터조차 남녀 구분 ‘높은 벽’
“정부, 위기의 청소년 지원대책 시급”
퀴어문화축제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퀴어문화축제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열일곱살 레즈비언 윤지(가명)가 정신병원에 끌려다니게 된 건 책상에 올려둔 편지 때문이었다. 윤지의 여자친구가 보낸 편지를 본 어머니는 딸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됐다. 갈등 끝에 어머니가 내린 결론은 ‘치료’였다. 윤지는 거부했지만 어머니는 단호했다. 정신병원 의사한테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치료 가능하다”는 답을 들을 때까지 윤지를 붙들고 여러 정신병원을 전전했다.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을 숨긴 채 남몰래 고통받는다. 사회에서 자립하지 못한 청소년 성소수자에겐 아픔이 가중된다. 성소수자란 이유로 가족과 갈등이 생길 경우 홀로 서기 어려운데다 학교에서마저 괴롭힘을 당할 수 있어서다. 설립 5주년을 맞은 청소년 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이 지난 5년간 상담·지원한 사례 2055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청소년 성소수자는 보호받아야 할 학교와 가정에서마저 차별과 혐오를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띵동에 상담을 요청한 청소년의 32.1%(660건)는 윤지의 경우처럼 가족 내 갈등과 학대를 호소했다. 18살 지호(가명)도 “부모님이 퀴어문화축제 반대집회를 하러 다닐 정도여서 내가 ‘동성애자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까지 폭력을 행사했다”고 띵동에 상담을 요청해왔다. 정민석 띵동 대표는 “자녀에게 혐오·무시 발언을 하거나 신체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많다. 시시티브이를 설치해 자녀의 외출을 막거나 종교시설에 보내 성 정체성을 전환시키려 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겪는 고통은 가정 내에서 그치지 않는다. 상담 사례 중 5.9%(121건)은 ‘학교 내 괴롭힘’과 탈학교에 대한 고민이다. 민주(18·가명)는 퀴어문화축제를 다녀왔단 이유로 같은 반 학생들에게서 수많은 혐오 발언을 들었다. 민주가 교실을 들어서면 학생들은 “동성애자 왔다”고 말하거나 “음란축제를 왜 하는 거야”라고 비꼬았다. 민주는 학교에서 식사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괴로움을 호소했다.

성소수자란 사실이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는 트랜스젠더인 경우 학교생활이 더욱 어렵다. 띵동에서 상담한 트랜스젠더 청소년 106명 중 27명(25.5%)은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다. 송지은 변호사는 “일본의 경우 트랜스젠더 학생을 위한 지침이 있어 학교에서 이들을 배려할 수 있으나 한국은 현장 가이드라인이 없다”고 짚었다.

깊은 고립감 속에서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자립과 탈가정을 꿈꾼다. 상담 사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자립과 탈가정’(35.6%)에 대한 질문이었다. 가정에서 벗어난 청소년들이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공간은 청소년 쉼터지만 성소수자들에겐 쉼터 이용조차 요원하다. 열아홉살 인수(가명)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뒤 쉼터를 찾았지만 쉼터는 그를 돌려보냈다. 가정폭력의 이유가 성 정체성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뒤 쉼터 쪽은 “성소수자를 다른 아이들과 같이 재우면 쉼터가 문란해질 수 있다”고 했다. 정 대표는 “남녀 쉼터가 나뉘기 때문에 트랜스젠더는 사실상 쉼터 이용이 어렵다. 성소수자인 사실이 알려지면 쉼터에서마저 은근한 차별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결국 쉼터조차 찾아가지 못하는 이들은 거리를 떠돌다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들은 차별과 혐오 속에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 상담 사례 중 27.2%(559건)은 정신건강에 대한 상담이었고, 자해를 하거나 자살 위기에 놓인 경우는 12.4%(255건)다. 송 변호사는 “많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차별을 마주할 때마다 무기력과 자괴감을 느끼고 ‘사라지고 싶다’, ‘나 혼자만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정부가 위기 청소년 지원체계에서 배제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포용할 수 있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대표는 “정부는 이미 존재하는 위기 청소년 지원체계 안에서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학교 현장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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