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후야, 너 만점이야. 그토록 열정을 다하더니 결과가 좋구나.”
고등학생 석후(가명)는 성취욕이 높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데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좌절이 많다. 그럼에도 공동과제에서는 힘든 일을 기꺼이 맡으며 주변 친구들의 학습을 친절하게 돕는 정감 있는 아이다. 자주 교무실에 찾아와 울먹이며 담임교사와 상담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는데 좋은 성적을 내어 반가웠다. 축하 인사에 잠시 기뻐하던 석후는 “만점이 꽤 있지만 수학에서 큰 실수를 했으니 의대를 지망하는 제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서 괴로워요. 이제 다 포기해야 할까요?” 하며 풀 죽은 모습을 보였다.
“저런, 꿈을 이루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구나. 너에게 의사라는 꿈은 어떤 걸까?”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의사인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싶어요. 힘들어하실 때도 있지만 열정을 다해 이웃의 건강을 돌보는 모습을 오랜 시간 동경해왔어요.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부족하기만 한 저를 확인하게 되니 늘 괴로워요.” “사회적으로 선망하는 직업이 아닌 삶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구나?” “네, 특히 난치병으로 평생 질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대학에서도 너처럼 건강한 내적 동기를 지닌 사람이 입학하기를 바라겠지. 숫자에 해당하는 점수로는 아쉬운 점이 있다 해도 학교생활의 모든 기록으로 최선을 다하는 네가 확연히 드러날 거야.” “하지만 결국 숫자로 최고를 증명해야 하는 게 의대잖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정도는 아닌가’ 싶어서 거듭 좌절하게 돼요.”
아이는 눈시울을 붉혔다. “너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단지 숫자로 우열을 비교해 이런 너를 놓친다면 오히려 대학이 아쉬운 거 아닌가?” 아이는 미소를 보이며, “부족한 제 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대학이 손해네요”라고 농담했다. “그럼, 손해이고말고. 네가 꿈꾸는 보람 있는 삶은 생각보다 많은 방법으로 이뤄갈 수 있어. 오로지 한길만 있는 건 아니니 모든 게 잘못될 것 같다는 두려움은 내려놓고 해오던 대로 꾸준히 이어가면 좋겠어.” 아이는 위로가 되었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듬해 전근한 뒤 우연히 늦은 밤 독서실에서 나오는 석후를 만났다. “선생님의 격려가 그리웠어요.” “그래, 요즘 마음은 어때?” “수학 시험을 한번 망치고 나니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시간 관리에 실패해 다 풀지 못하곤 해요. 준비를 단단히 하고도 긴장과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제가 너무 한심해요.” “저런, 이렇게 밤낮없이 열심히 공부하는데… 네가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는 거니?” “한없이 못나게 느껴져요.” “그렇구나. 협력수업에서는 능력이 부족한 친구도 존중하며 끝까지 함께하도록 돕던데… 너 자신에게는 그런 마음을 내기 어려운 거야?” “네, 이토록 애쓰는 저 자신을 망치는 주범 같아서 그저 미워요.”
“다른 친구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도 만족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 너는 그애를 미워하니?” “아니요. 위로하고 응원하죠.” “그런데, 왜 너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하는 걸까? ‘24시간 함께하며 네 모든 노력을 가장 잘 아는 유일한 존재’가 자신을 알아주고 격려한다면 정말 든든할 텐데. 오늘 낮 수업에서 한 아이가 ‘공부로 지친 친구들’을 위해 추천한 곡이 있는데 한번 들어볼래?” 하며 휴대전화로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를 들려주었다. 첫 소절부터 석후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들은 소감을 묻자, “주변 사람의 위로는 잠시뿐, 정작 저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어 늘 지옥 같았어요. 이제는 이런 제가 너무 안쓰러워요. 오늘부터 저 자신에게 매일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무한비교 사회에서 높은 성취를 하는 아이들의 삶도 결코 만만치 않다. 오늘도 많은 아이가 스스로를 향한 한없는 채찍질로 멍들어가고 있다. 어른들이 만든 성취지향 사회에서 저마다의 길을 찾아 고독한 여정을 걷고 있는 아이들에게 ‘수고한다’는 격려를 아끼지 않기 바란다. 스스로를 향하는 긍정적
습관이 형성될 때까지.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