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간부의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이를 ‘병사의 가정불화 탓’으로 돌린 국가에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김병철)는 군 복무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아무개씨의 부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2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1983년 입대해 강원도 철원에 있는 한 군부대에서 군견병으로 근무한 김씨는 1985년 6월 몰래 훔친 수류탄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조사에 나선 군 수사기관은 김씨의 사망원인이 ‘부친의 술버릇으로 인한 가정불화’와 ‘장기간 지피(GP·감시초소) 근무로 인한 회의감’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에 불복한 김씨 부모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사망 원인을 규명해달라고 요구했다. 위원회는 사건 관련자들을 조사한 뒤 지난해 9월 “선임하사의 구타와 폭언 등 가혹 행위가 김씨의 사망원인”이라고 판단했고 국방부 장관에게 ‘순직으로 재심사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김씨 아버지는 위원회 결정에 따라 울산보훈지청에 아들을 국가유공자로 등록했고 정부는 지난해 11월 김씨가 순직했다는 사망확인서를 발급했다.
김씨 부모는 그 뒤 군 수사기관이 아들이 사망한 이유를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숨기고 가정불화 탓으로 돌린 데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김씨가 받을 수 있었던 보훈급여금 2억8천여만원과 위자료 4천만원 등 총 3억2천만원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부모가 군 수사기관의 부실한 조사로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지 못해 정당한 위로를 받지 못했고 아들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하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기에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국가의 위자료 지급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다만, 보훈급여금에 대해선 “김씨 사망 무렵 시행되던 법률에 따르면 사망과 직무수행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쉽사리 단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군수사기관이 직무상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기에 부모가 그 보상과는 별개로 국가배상법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는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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