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가 지난 2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건설현장 폭염대책마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최고기온이 34도까지 치솟은 25일 정오께 지게차 운전자인 허아무개(56)씨는 서울 마포구의 한 빌딩 신축 현장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서울시가 24일 0시부터 실내외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지만, 그의 얼굴에 마스크는 없었다. 마스크를 눌러쓴 행인들이 허씨를 흘깃 쳐다봤지만 그는 모르는 척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는 이날 아침 9시부터 3시간여를 땡볕 속에서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땡볕 때문에 그냥 있어도 타 죽을 지경이다. 누가 나를 보고 마스크 안 썼다고 신고를 해도 어쩔 수 없다.” 허씨가 말을 할 때마다 땀이 물처럼 튀었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서울·경기·부산 지역에서 실내외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가운데,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현장 노동자들이 마스크로 인한 더위를 호소하고 있다. 찜통더위로 마스크를 계속 쓰고 일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마스크 미착용으로 신고될 경우 10만원 이하 과태료부터 많게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장기간의 장마로 공사가 늦어지자 건설사들은 공사 기한을 맞추기 위해 폭염특보에도 휴식시간 없이 작업을 강행하고 있다. 30년 경력의 건설노동자인 박아무개(60)씨는 “숨이 턱턱 막힌다. 요즘 땀으로 목욕을 할 정도로 더운데 현장 감독관이 무조건 마스크를 쓰고 일하라고 하니까 답답하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는 정부와 건설사에 “무더위 시간을 피한 이른 퇴근,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물·그늘·휴식) 등에 대한 관리 감독에 나서라”고 촉구한 바 있다.
최근 배달 주문이 다시 폭증한 배달노동자들도 ‘마스크 위험’에 노출돼 있다. ‘배민라이더’인 조봉규(40)씨는 “며칠 새 주문이 늘어 바쁜데 마스크를 낀 채 계단을 오르내리면 현기증이 난다. 쉴 수 있는 공간도 없고, 마스크를 벗었다가 주민을 마주치면 눈치가 보여 요즘이 제일 힘들다”고 호소했다. 실내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처지도 다르진 않다. 서울의 한 대학 청소노동자 김아무개(58)씨는 “에어컨이 없는 화장실에서 청소할 땐 뜨거운 김이 올라와 숨쉬기가 힘들다. 남들이 안 볼 때 마스크를 잠깐 내렸다 다시 올리길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스크 의무 착용에 대한 부담이 취약한 현장 노동자에게만 전가되지 않도록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코로나 재확산 사태가 심각하니 노동자들도 마스크 착용에 각별히 주의해야 하지만, 폭염과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해 고용주들이 휴식시간을 늘려줄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방역당국으로선 가급적 협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다만 10월부터 과태료가 부과되고 현재는 계도 중이다”라고 말했다.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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