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경영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이번주 초 이 부회장 등 삼성 쪽 관계자 10여명을 불구속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그룹 총수인 이 부회장이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계열사인 삼성물산과 이 회사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보고 업무상 배임 혐의도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2018년 12월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를 처음 압수수색한 지 1년8개월 만에 수사가 마무리되게 됐다.
3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이복현)는 이 부회장과 최지성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 등 10여명을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과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이번주 초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검찰은 계열사 경영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이 부회장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의 승계 작업을 위해 계열사인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합병을 졸속으로 추진한 것으로 보고, 미전실 관계자 및 삼성물산 이사들과 함께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임은 지난 6월4일 영장 청구 때는 포함되지 않았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지휘부와 수사팀 모두 이 부회장 기소에는 의견이 일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법무부가 지난 27일 발표한 검찰 인사에서 ‘삼성바이오 수사 및 공소유지 업무의 연속성’을 이유로 이 사건을 초기부터 수사해온 김영철 의정부지검 형사4부장을 서울중앙지검 특별공판2팀장으로 발령내면서 이 부회장 기소는 예견됐다.
지난 6월26일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 불기소 및 수사 중단’ 권고를 내린 뒤 검찰은 두달 동안 적용 혐의와 법리 등을 신중하게 재검토했다. 이 사건이 복잡한 경제범죄를 다루는 만큼 삼성에 우호적인 교수를 포함해 수십명의 경영·회계 전문가들을 불러 광범위하게 의견을 청취했다. 이들 중 다수가 ‘회사의 경영상 이유가 아닌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의 이익을 목적으로 합병이 진행된 것으로 보이며 그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의사 결정이 있었다’는 의견을 수사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이 내부 의견 수렴 차원에서 개최한 부장검사 회의에서도 ‘기소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이 부회장 등은 최소한의 사업성 검토 없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수년 전부터 계획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조작된 합병비율 보고서 등 각종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국민연금 등 주요 주주를 상대로 로비를 벌인 혐의를 받는다. 또 주가 방어를 위해 제일모직 자사주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등 시세조종 혐의도 받는다. 이 부회장 등은 합병 전까지 제일모직의 핵심 자회사인 삼성바이오가 보유한 수조원대 콜옵션 부채를 숨겨오다가, 합병 뒤 콜옵션 조항이 드러나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에 빠질 상황이 되자 이를 무마하려 4조5천억원대 회계사기를 벌인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직접 대책회의를 주재하거나 미전실로부터 진행 상황을 보고받는 등 주도적으로 개입한 다수의 물증과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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