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밤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의 원두막에 모인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옆에는 ‘거리두기로 코로나19를 극복하자’는 펼침막이 붙었다. 강재구 기자.
“거리는 2m, 마음은 0m. 거리두기로 코로나19 함께 극복해요” 평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 한강 주변 거리에 펼침막이 내걸렸다. 하지만 9일 밤 10시30분께 펼침막 뒤 원두막에선 ‘술판’이 벌어졌다. 마스크도 없이 둘러앉은 대여섯명의 일행 앞엔 맥주 캔과 안주가 잔뜩 놓여 있었다. 영업을 마친 한강공원 내 편의점 근처에서도 열명 안팎의 남녀가 술과 음식을 한가득 든 채 어둠 속에서 빈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서울시가 여의도·뚝섬·반포 등 한강공원의 일부 구역을 통제되자 이용 제한을 하지 않는 공간을 찾아 취객이 몰려든 것이다.
수도권의 ‘준3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로 밤 9시부터 술집을 포함한 음식점 이용이 제한되고, 일부 공원마저 통제되자 2·3차 자리를 찾는 취객들이 밤마다 거리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고 있다. 일부는 모텔 등 숙박업소를 찾아다니며 술을 마시기도 하고, 게이머들도 피시(PC)가 있는 숙박업소나 수도권 밖의 피시방을 찾으면서까지 ‘원정 게임’을 즐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강도 거리두기는 ‘재택’을 통해 대면 관계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표인 만큼 ‘되도록 누구나 집에 머물며 이 시기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 숲길 공원 인근에 모여 술을 마시는 사람들. 채윤태 기자.
이날 밤 <한겨레>가 영등포구와 마포구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돌아보니, 공원과 거리 곳곳에 주저앉아 음식이나 술을 먹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일부 20대들은 방역지침 때문에 일찌감치 문을 닫고 들어간 상점 앞 거리에 앉아 포장음식과 술을 즐기고 있었다. 동네 카페의 테라스나 교회·성당 앞 계단을 ‘점거’하고 골목 술자리를 갖는 중년 남성들도 여럿이었다.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선 시민들의 발길을 차단하려 설치해둔 통제선까지 치우고 앉아 있는 이들도 보였다.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다.
편의점 안팎에서도 취식이 금지됐지만 편의점 주변에도 취객들이 바글거렸다. 영등포구 당산지구대 인근 편의점 반경 100여m 안에선 어림잡아 30여명이 골목 술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고성을 지르거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취객도 있었지만 편의점 직원도 어쩌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시민들 간의 갈등으로 번지거나 방역에 구멍이 뚫릴세라 방역당국과 경찰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지난달 거리두기 수칙이 강화된 뒤 지자체와 합동점검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숙박업소가 술을 파는 등 불법 영업행위까지 벌이자 서울시는 숙박업소에서 불법으로 주류 판매가 이뤄지지 않도록 현장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최원석 고대안산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장소를 막론하고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방역 차원에서 안전할 수 없다”며 “행정적으로 모든 모임을 통제할 수 없으니 시민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거리두기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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