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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 집 잃은 철거민은 한 평반 천막에서 명절을 난다

등록 2020-09-30 13:13수정 2020-09-30 13:14

방배 5구역 강제집행 철거민
재건축 철거민 보상 길 없어
폭력적인 강제집행 끝 상처입고도
사법처리는 세입자들만…
24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길가에 설치된 천막에서 이임순(63·가명)씨가 남편 박재광(72·가명)씨와 폭력적으로 집에서 쫓겨난 뒤 갈 곳 없어 살던 동네 길거리 천막에서 지난 5월 말부터 4개월 동안 노숙을 하고 있다. 철거뒤 발병한 원형 탈모로 항상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4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길가에 설치된 천막에서 이임순(63·가명)씨가 남편 박재광(72·가명)씨와 폭력적으로 집에서 쫓겨난 뒤 갈 곳 없어 살던 동네 길거리 천막에서 지난 5월 말부터 4개월 동안 노숙을 하고 있다. 철거뒤 발병한 원형 탈모로 항상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4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길가에 설치된 천막에서 이임순(63·가명)씨가 남편 박재광(72·가명)씨와 폭력적으로 집에서 쫓겨난 뒤 갈 곳 없어 살던 동네 길거리 천막에서 지난 5월 말부터 4개월 동안 노숙을 하고 있다. 철거뒤 발병한 원형 탈모로 항상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4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 길가에 설치된 천막에서 이임순(63·가명)씨가 남편 박재광(72·가명)씨와 폭력적으로 집에서 쫓겨난 뒤 갈 곳 없어 살던 동네 길거리 천막에서 지난 5월 말부터 4개월 동안 노숙을 하고 있다. 철거뒤 발병한 원형 탈모로 항상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추석 계획은 따로 없다. 추석 당일치기로 경기도 과천에 성묘 다녀오는 게 박재광(72·이하 모두 가명)씨 부부의 추석 계획 전부다. 찾아올 자녀도, 보러갈 친척도 없다. 성묘를 다녀와 쉴 집도 없다. 박씨 부부가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사거리에 플라스틱으로 세운 한 평(3.3㎡) 짜리 천막을 집 삼아 산 지 벌써 4개월째다.

박씨는 재건축 철거민이다. 강제집행으로 보상 한푼 받지 못하고 집에서 쫓겨났다. 집을 지키려 1년 가까이 직업을 못 구해 생계도 끊겼다. 박씨 부부는 주변에서 보태주는 생활비로 쌀을 사 버너로 밥을 지어 먹고 있다. 밤이면 몰래 주변 상가에 들어가 화장실을 쓴다. 눈치보며 화장실을 들락거리니 부인 이임순(63)씨는 방광염에 걸렸다. 씻지 못한 이씨의 몸엔 곰팡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건 소음과 시선이다. 40년 살아온 방배동이 낯선 거리가 됐다. 8차선 도로 옆에 천막을 설치한 탓에 밤에도 차로의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나갈 때마다 힐끗거리는 사람들의 눈길도 고통이다. 지난 17일 <한겨레>와 만난 이씨는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차 소리 때문에 만성 두통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2018년 부부가 살던 방배5구역 재건축 사업이 본격 시작된 뒤 세입자 대부분이 이주했다. 박씨 부부는 방배동을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마지막 세입자들 중 하나다. 재개발과 달리 재건축 세입자는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30여 세대의 주거·상가 세입자가 남아 싸웠지만 5월11일을 기점으로 대부분 견디지 못하고 터전을 떠났다.

지난 5월11일, 굴착기가 강제집행 과정에서 뚫은 방배5구역 ‘금호천막’ 건물 벽 구멍에 세입자 한명이 앉아있다. 세입자 제공
지난 5월11일, 굴착기가 강제집행 과정에서 뚫은 방배5구역 ‘금호천막’ 건물 벽 구멍에 세입자 한명이 앉아있다. 세입자 제공

그날 방배5구역 사거리 ‘금호천막’ 건물에서는 용산참사를 방불케 하는 폭력적인 강제집행이 진행됐다. 쇠파이프와 빠루(노루발못뽑이)를 손에 든 용역들이 크레인을 타고 옥상으로 밀려들었다. 박씨는 벽돌에 맞아 무릎에 금이 갔고, 또다른 상가세입자는 용역들에 발길질을 당해 전치 3주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법의 심판대에 오른 건 목숨을 걸고 저항한 세입자 쪽이다. 용역들과 부딪힌 한 세입자는 9월 초 특수공무집행방해와 특수폭행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박씨 역시 4박5일동안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유치장에서 나왔을 때 돌아갈 집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하루아침에 박씨는 노숙인 신세가 됐다. 그나마 재건축 세입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건 재건축 뒤 들어설 임대주택 입주다. 그러나 누구나 입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008년 이전부터 방배5구역 내에 거주했어야 한다.

지난 17일 방배5구역 내 강제집행은 대부분 마무리됐다. 내년 봄이면 본격적인 재건축 공사가 시작된다. 단독주택과 빌라가 늘어섰던 곳에 최고 높이 33층의 아파트 29개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같은 날 박씨는 건너편 천막이 철거되는 걸 봤다. 갈 곳 없는 세입자들이 머물던 또 하나의 천막이다. 박씨도 언제 천막을 철거해야 할지 모른다. 이곳마저 허물어지면 박씨 부부는 거리 노숙인이 될 처지다. 한숨을 푹 쉬던 박씨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목에 걸 밧줄 매듭을 묶었다가 도로 천막 구석에 던졌다.

박씨의 초록색 천막 지붕 아래엔 북어가 매달려 있다. “현장소장이 천막짓는 날 줬어. 복 들어온다고. 조합이 우리 집 구해줘 천막 나갈 때 저 북어로 여기 돌아다니는 임신한 강아지 국 끓여줄 거야.” 한숨만 내쉬던 이씨가 천막을 나갈 상상을 하며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그는 “원하는 건 따로 없다. 예전 살던 집처럼 방 두 칸짜리 집만 조합이 구해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조합이 그 기대를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박씨 부부가 이 천막을 나갈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배가 부를대로 부른 개의 출산 날은 하루하루 가까워지고 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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