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경남 김해시의 한 경찰서 앞에서 여성 경경이 성희롱 피해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해/연합뉴스
한 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하는 여성 경찰 ㄱ씨는 인사이동이 있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상사에게서 뜬금없는 제안을 받았다. “우리 동료의 사건과 관련된 탄원서를 함께 쓰자”는 것이었다. ㄱ씨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중에야 그는 탄원서가 후배 여성 경찰을 성희롱한 상급자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됐다. ㄱ씨는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나중에 일하다 내가 성희롱을 당해서 신고를 하더라도 상급자의 동료들이 두둔하는 상황을 상상하니 신고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여성 경찰 4명 중 1명꼴로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하지만 신고에 나선 경우는 극히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은주 의원(정의당)이 5일 경찰청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2019년 성희롱 고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3년 내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경찰 직원은 전체 응답자의 6.3%(712명)였다. 피해자 중에선 여성 경찰이 76.1%를 차지했다. 전체 여성 응답자의 26.4%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번 실태조사는 경찰청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이 지난해 11월 시행한 것으로, 경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자메시지로 진행된 이번 조사에는 전 직원의 6.4%인 8674명이 참여했고, 응답자 중 여성은 1363명이다.
성희롱 피해를 입은 직원은 피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등 2차 피해에도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의 38.3%(289명)가 ‘2차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는데, 여성 피해자 중에선 절반에 가까운 인원(44%)이 2차 피해를 겪었다. 가해자는 상급자(70.1%)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 때문에 피해를 입고도 ‘참고 넘어갔다’는 응답이 78.5%로 가장 많았고, 신고에 나선 경우는 피해자의 2.2%에 불과했다.
이처럼 여성 경찰들이 성희롱 피해를 당하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남성 중심적인 조직 문화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 내 여성 경찰 모임인 ‘경찰젠더연구회’의 주명희 경정은 “외모 평판이나 성적 대상화 등 여성 직원이 느끼기에 명백한 성희롱인 언행을 농담으로 여기는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가 경찰 내에 존재한다”고 짚었다. 조사에서도 경찰관들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성차별적 조직문화 개선’(23.4%)을 첫손에 꼽았다.
이은주 의원은 “실태조사가 매년 실시되는 만큼 올해 조사에서는 응답률을 높이고, 성희롱 고충을 심층 조사할 수 있도록 조사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짚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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