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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글날도 차벽에 “자유침해 과잉” “생명보호 정당” 논란 가열

등록 2020-10-07 04:59수정 2020-10-07 07:12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헌재 “집회 막는 차벽은 위헌”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땐
법원 “불법 예방 위해 불가피”

과거엔 ‘폭력·교통방해 방지’ 목적
지금은 ‘바이러스 차단’ 차원 달라
“방역·집회자유 조화 위한 논의를”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이 집회·시위 등에 대비해 설치한 철제 울타리 근처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지난 개천절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추진했던 단체가 오는 9일 한글날에도 같은 장소에서 2000명 규모의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한 상태다. 서울시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도심에서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경찰이 집회·시위 등에 대비해 설치한 철제 울타리 근처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지난 개천절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추진했던 단체가 오는 9일 한글날에도 같은 장소에서 2000명 규모의 집회를 열겠다고 경찰에 신고한 상태다. 서울시는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도심에서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경찰이 지난 개천절 집회에 이어 오는 한글날 집회에서도 설치를 예고한 ‘차벽’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집회가 예상되는 장소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위헌적이라는 비판과, 국민 건강과 생존권 보장을 위해 기본권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팽팽히 맞선다.

경찰이 세운 차벽이 ‘감염병 예방’ 목적에 대응한 정당한 수단이었는지가 쟁점이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차벽’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차벽이 설치됐던 개별 상황에 견줘 경찰의 공권력 행사를 인정하거나 집회의 자유를 우선하는 판단을 내렸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설치된 차벽은 정당하다고 본 법원 판례를 제시하며 “코로나19 확산을 사전에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설명한다. 서울고법은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사건에서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의 범죄를 예방 또는 제지하기 위해 차벽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차벽 외에 (청와대 행진 등의) 위험을 제지할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며 차벽 활용의 불가피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차벽 설치를 포함한 경찰의 ‘원천봉쇄’는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009년, 불법집회를 막는다며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두른 경찰의 행위를 ‘위헌’으로 판단했다. 헌재는 △시민들의 통행을 전면 제한한 차벽은 필요 최소한의 조처가 아니며 △집회 방지 필요성이 있다 해도 이를 달성할 다른 방법도 있었다고 봤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도 개천절 집회의 차벽에 대해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할 경우 기본권 제한이 가능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선 안 되는데 집회 자체를 금지한 것은 본질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6일 보수단체의 자중을 당부하면서도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권리다. 경찰이 방역편의주의를 앞세워 함부로 침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가벼운 접촉만으로 감염되기 쉬운 코로나19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집회를 우려했던 과거의 집회의 자유 제한과는 달리 봐야 한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개천절 광화문광장 집회 금지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장낙원)는 “코로나19가 확산될 위험이 합리적으로 조절되지 못하고 효과적 치료 방법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집회 등으로 인한) 위험은 공중보건이라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짚었다. 10대 미만의 차량이 움직이는 이른바 ‘드라이브스루’ 집회에도 법원은 엄격한 방역수칙을 제시하며 ‘조건부 집회’를 허용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방역의 일환으로 대규모 집회를 방지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정부 비판을 막기 위해 차벽을 세운 것과 정당성 면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8·15 집회로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것을 확인한 뒤 불법집회가 도심에서 열리는 것을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8·15 집회에 동원된 경찰 9536명이 진단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근무현장에 투입되지 못하면서 치안 공백이 생겼는데, 경찰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차벽을 설치하고 물리적으로 차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면서 집회의 자유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현재 독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도 구체적 사례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집회의 자유 보장 폭을 결정하고 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이황희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감염병이 심각한 상황에서 기본권 제한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다. 법원도 여론을 참조해 적절한 방역수칙을 제시하는 등 적정 수준을 모색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인권위원이기도 한 임재성 변호사는 “정부가 야외나 음식점, 공연장 등에서의 거리두기 수칙을 세심하게 살폈듯 방역수칙을 지키면서도 집회의 자유를 보장할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장예지 이재호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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