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동남아에서 충남 홍성으로 시집와 생활하고 있는 한 이주여성이 7일 자신들을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매매혼을 부추기는 국제결혼 알선업체의 플래카드를 낫으로 찢고 있다. 연합뉴스
‘캄보디아인은 돌변하는 습성이 있어서 평소에는 조용하고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지만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외지인이 현지인을 비하하거나 구박하는 행동을 하면 폭행이나 총격을 가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태국인들은 깊은 사고를 하거나 창조적 고통을 기피하고 무슨 일이든 일찍 끝내기를 바란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이주민과 결혼한 한국인 배우자를 위해 펴낸 ‘결혼 풍속과 사회문화 이해’ 교재의 일부다. 국제결혼한 부부의 상호 이해를 돕는다는 취지에서 2019년 만든 교재인데 되레 차별과 편견을 양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13일 보도자료를 내어 “법무부의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 교재에서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태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강화하는 표현이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법무부 산하 15개 출입국관리사무소 내 이민통합지원센터는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태국(타이), 몽골,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 7개 국적자와 중개업체를 통해 국제결혼한 한국인에게 4시간짜리 의무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문제가 된 교재는 이때 사용된다.
법무부가 2019년 발행한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 교재 일부. 김진애 의원실 제공
결혼 풍속과 문화를 국가별로 펴낸 이 교재에는 정부가 펴낸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편견과 혐오가 뒤섞인 표현들이 담겨 있다. ‘필리핀’ 편에는 “자존심이 강한 필리핀인들을 욕보이게 하는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폭력이 발생하기도 한다. 사람 간의 협약과 약속 등을 기일 내에 지키거나 정형화된 틀 내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중국’ 편에선 “중국인은 중화사상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문화가 유일한 것으로 여기기에 주위의 민족을 오랑캐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했고, ‘베트남’ 편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은 체면을 유지하려는 습성과 자신들의 명예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한 일에도 끝까지 변명과 이유를 대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수를 했을 때 사과나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적었다.
전문가들은 혐오와 편견을 유발하는 교육자료로 인해 상호 이해가 아닌 갈등과 폭력이 조장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법무부 교육자료에 대해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지 않은 나라를 굉장히 협소하게 바라보고 존중하지 않는 인식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자료를 통해) 주입된 편견으로 배우자를 존중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관리 및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해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법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제도 취지와 달리 특정 국가에 대한 편견이 조장될 수 있는 부정적 내용이 여과 없이 기재되어 있는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성인지・다문화 분야 감수를 받아 교육자료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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