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타이 방콕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살수차를 이용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방콕/EPA 연합뉴스
최근 타이(태국) 방콕 도심에서 민주화 시위대 해산을 위해 동원된 물대포(살수차)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한국에서 수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타이에서 시위대 해산에 이용되고 있는 살수차는 모두 3대로, 이 중 적어도 2대는 한국 업체인 ㅈ모터스가 수출한 장비다. 살수차 시장 점유율 세계 1위인 ㅈ모터스는 아랍에미리트(UAE), 시리아 등 분쟁이 많은 18개국에 물대포 차량을 수출했다. 이 업체는 2010년과 2013년, 두차례에 걸쳐 타이 왕실 경찰본부에도 살수차를 수출했다. 현지 언론인 <방콕 포스트>는 타이 정부가 1대당 2400만밧(약 8억7천만원)을 주고 살수차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왕정 국가인 타이에선 총리 퇴진과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타이 경찰은 지난 16일에도 이 차량을 이용해 최루액과 푸른색 페인트를 섞어 시위대에 분사했다.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의 물대포 직사 살수로 숨진 백남기 농민 사건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타이 현지 집회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위대 일부는 물대포에 맞아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했다고 한다. 박근혜 정권 당시 시위 진압장비 판매를 적극 장려한 ‘치안 한류’의 이면인 셈이다. 이 살수차 제작 업체는 이날부터 경찰청이 연 국제치안산업박람회에도 전시 업체로 참가 중이다.
타이에 살수차량을 수출한 업체가 21일부터 시작된 국제치안산업박람회에 전시업체로 참가해 홍보하고 있다. 누리집 갈무리
2015년 11월 백남기 농민이 집회에 참석했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문재인 정부에서마저 치안한류를 위해 치안 관련 업체들을 홍보하고 나선 데 대해 전쟁없는세상 등 시민단체들은 “치안 장비들이 유사시에 언제든 각국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이런 비극이 치안 한류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탄했다. 백남기씨의 유족들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백남기씨의 큰딸 백도라지씨는 <한겨레>에 “타이에서 사용된 살수차가 한국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큰 슬픔을 느꼈다. 살수차가 인명 피해를 유발할 수 있어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국외에서도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민간 업체가 생산해 해외로 수출하는 살수차에 대해선 경찰청이 관여하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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