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철폐’라는 머리띠를 두른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의 전태일 열사 동상. 남양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의 전태일 묘역에 13일 그의 가족들이 ‘무궁화 훈장’을 놓았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수여한 훈장이었다.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는 순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일하다 죽지 않게 비정규직 철폐하라”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일터에서 죽어간 비정규직 50명의 영정을 손에 든 채 묘역을 둘러싸고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였다.
이날 전태일재단의 주최로 열린 ‘제50주기 전태일 추도식’은 전태일 열사에 대한 추모에만 그치지 않았다. ‘2020년 전태일’의 현실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다짐을 되새긴 행사였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추도사에 앞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는 “50년 전 전태일 동지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근로기준법 밖에서 기계처럼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는 노동자가 많다. 우리가 전태일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다시 그와 손잡고자 하는 까닭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이사장은 “전태일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있다. 함께 외치고 있다. 함께 싸우고 있다”고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전태일 열사에게 추서한 무궁화훈장. 남양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추도식을 찾은 이들 모두 5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노동 현실을 개탄했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는데 지금은 지켜야 할 근로기준법조차 없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김재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 “코로나19를 핑계로 구조조정, 해고, 휴직, 희망퇴직, 정리해고가 계속되고 있다.”(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아직도 많은 아이티(IT) 노동자들은 ‘포괄임금제’라는 이름으로 장시간 노동을 감수하며 판교와 구로의 등대로 불리고 있다.”(박상희 네이버 노조 사무장) “이 순간에도 택배 노동자들은 계속 죽어가고 있다. 살기 위해 죽어가는 역설의 현실을 반드시 이겨내겠다.”(이재명 경기도지사)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남양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전태일의 친구’ 이승철씨는 추도사가 끝난 뒤 “올해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많이 오신 것 같다. 비정규직과 실업자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전 의원도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아침에 일하러 갔다가 저녁에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됐다면 50주기 추도식이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두 아들을 데리고 올해 처음 추도식을 찾은 김아무개(42)씨는 “우리 아이들도 커서 노동자가 될 수 있는데 이런 뜻깊은 날에 직접 이곳을 찾아 (아이들에게) 노동자들의 숨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백아무개(27)씨도 “세상이 점점 편리해지고 좋아진다고 하지만 그 안 노동자들의 권익과 삶의 질이 함께 향상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추도식 참석 소감을 밝혔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조 위원장에게 전태일노동상(단체상)을 수여하고 있다. 남양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추도식 막바지 2010년 당진 용광로에 빠져 사망한 20대 청년에게 바친 노래인 <그 쇳물 쓰지 마라>가 가수 하림의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묘역에서 멀찍이 떨어져 추도식을 지켜봤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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