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성의 원리를 적용해야 할 때 평등성을 적용하면 회사는 효율성을 상실하고 경쟁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반대로 평등성의 원리를 적용해야 할 영역에 공평성을 적용하면 조직은 피폐하게 됩니다. 개개인의 탁월한 성과라는 것도 사실은 수많은 협력자들의 도움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Q. 온 마음을 쏟아 일하고 애를 쓰는데도 인사평가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고, 위축돼 실수도 늘어납니다. 업무보다 인간관계에 치중해서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평판관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승진도 빠른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합니다. 저는 직장생활과 맞지 않는 사람일까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20대 때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첫 직장에서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연말에 평가 결과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실수를 한 건 아니었지만 상사가 제 업무 결과에 대해 그리 신통치 않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계속 받았습니다. 3년이 이어지자 저는 직장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었고 결국 그 직장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회사 임원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최고경영자(CEO)가 제가 해온 일들에 대해서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식으로 하나하나 비판하며 모두 중단시키고는 제겐 사원급이 해야 할 일들을 부과했습니다. 심지어는 결재 라인에서 저를 사실상 배제하는 바람에 부하 직원들이 제 방에 오는 걸 꺼릴 정도가 됐습니다. 더는 버틸 수가 없어서 연말에 사직할 생각으로 그룹 본사에 제 뜻을 전했습니다. 다행히 본사에서는 인터뷰를 거쳐 조직 진단을 끝내고는 저를 그룹 본사로 이동하도록 했습니다. 내가 직장생활과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저 상사와 내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내가 온 마음을 쏟아 일에 집중하는 한 내겐 잘못은 없습니다. 자신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경영 이야기로 나아가봅시다. 만일 최고경영자가 “천재 한명이 보통 사람 10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한다면 그 말을 듣는 조직 구성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대다수는 자신을 10만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모멸감을 느낄 겁니다. 반대로 최고경영자가 한명의 스타를 언급하면서 “9만9999명이 모두 각자 자기가 할 바를 다 한 덕에 한명이 대표로 빛을 본 것이다”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조직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소중한 경영의 주체라는 자존감을 갖게 될 겁니다.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것은 성과 보너스를 받았을 때나 승진했을 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동기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사가 자신의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도와주고, 때로는 시련을 통해서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때 조직 구성원은 배려받고 있다고 느끼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합니다. 무조건 잘해주는 게 배려가 아니라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게 진정한 배려라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해외 엠비에이(MBA·경영전문석사) 과정에 보내준다는 조건으로 과거 일할 때 한 직원을 특별 채용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사 사정으로 해외유학은 계속 미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직원은 개의치 않고 묵묵히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는 매년 성과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아왔고 상사의 피드백도 적절해 조직에서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회사는 티가 나게 그를 특별 대우하지는 않았습니다. 몇년 후 과장 때 그는 회사에서 선발하는 해외유학 대상자가 돼 2년간의 석사과정을 밟고 돌아왔습니다. 소속 회사 임원들은 그를 잘 써먹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최고경영자가 그를 다른 계열사로 옮기도록 했습니다. 큰 회사에서 일하며 성장할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직원은 그런 결정을 이해했고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두 회사 간 업무 협조가 원활해졌으며 그의 이동을 반대했던 임원들조차 잘한 결정이라고 칭찬했지요.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라는 존재감을 확인해주면 조직 구성원의 주인 정신이 솟아나게 됩니다. 이 일은 내 일이고 이 부서는 내 부서이며 이 회사는 내 회사이고 곧 내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주인 정신이 솟아나면 자연스럽게 창의성이 발휘됩니다. 창의성은 결코 강요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되면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많은 회사가 인간존중경영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때 인간은 노동하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노동하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저는 두가지 차원에서 봅니다. 하나는 ‘자원’(resource)으로서 생산과정의 한 요소라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원천’(source)으로서 존재 그 자체라는 점입니다. 노동을 자원 혹은 생산요소로 볼 때는 공평성(equity)의 원리가 적용돼야 합니다. 개개인의 능력과 성과의 차이를 인정하는 ‘기능적 불평등성’은 성과 중심의 평가를 통해 일 잘하는 사람에게 성과급도 많이 주고 승진도 빨리 시키는 것이지요. 일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똑같이 월급 받고 똑같이 승진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에 기반을 둡니다. 물론, 능력과 성과를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평가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잘 운영된다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부분이 어렵다고 해서 공평성의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원천’ 측면에서 볼 때 노동하는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서 존엄한 존재입니다. 이 차원에서는 평등성(equality)의 원리가 적용돼야 합니다. 누가 누구보다 더 낫다, 못하다, 높다, 낮다 등으로 차별할 수 없습니다. 즉 ‘존재론적 평등성’의 원리가 적용돼야 하지요. 회사의 최고경영자든, 생산직 노동자든 구내식당 식단이 달라야 할 이유가 없고 다 같이 줄 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자원 측면에서 보면 노동은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관리의 대상이지만 원천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이성적, 감성적, 영성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노동하는 인간은 생산 과정의 설계자이고 경영의 주체가 될 수 있지요. 조직 구성원이 역량을 어떻게 발휘하도록 할 것인가야말로 회사와 경영자의 본질적 책무입니다.
경영자는 공평성의 원리와 평등성의 원리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공평성의 원리를 적용해야 할 경우에 평등성의 원리를 적용하면 회사는 효율성을 상실하고 시장 경쟁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시장경제에서 효율성의 확보야말로 생존의 기본 조건이죠. 회사와 조직 내부에서의 공정한 경쟁도 중요합니다. 조직 내의 온정주의를 철저히 경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평등성의 원리를 적용해야 할 영역에 공평성의 원리를 적용하면 조직은 삭막해지고 조직문화는 피폐하게 됩니다. 개개인의 탁월한 성과라는 것도 사실은 수많은 협력자들의 도움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자발적인 협력의 조직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지속해서 건실한 경영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인간(人間)이란 한자를 보면 서로가 기대고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모습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 그 공간의 에너지, 이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공평성과 평등성, 모순(contradiction)으로 보이는 두가지를 경영자는 역설(paradox)로 풀어내야 합니다. 마치 동양사상에서 보는 음양 모습 같기도 합니다. 만물을 생성하는 에너지의 근원으로서 음과 양은 구분되어 있으나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음과 양은 늘 함께 있어야 합니다. 조직 운영에서도 공평성과 평등성은 구분돼 있으나 절대 분리되지 않으면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인간존중경영은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사구시적인 현실원리입니다. 희망과 용기를 품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충만한 조직은 어떤 경우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지만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자의, 리더의 책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이병남.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지아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다 1995년 엘지(LG)그룹 임원으로 입사해 인사, 교육, 노사관계 및 지배구조 업무를 맡았다. 2008년 사장 승진하면서 인화원장으로 부임해 8년간 원장직을 수행하고 2016년 퇴임. 인간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만 이를 풀어낼 해법 역시 인간에게서 비롯된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저서 <경영은 사람이다>(2014)에 담겼다. 인간존중이라는 경영의 본질을 잊지 않고 21년간 숨 가쁘게 현장을 누벼온 그가 일터에서 겪는 우리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 4주에 한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