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서인천지사 특별기동팀 기사가 맨홀끼리 이어주는 선통 작업을 하려고 맨홀로 들어가고 있다. 2012년 한겨레21 906호 포토스토리. 사진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yongil@hani.co.kr (이 사진은 아래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맨홀 위로 머리를 내밀자 차량 한 대가 급정거했다. 2018년 11월 경기도 용인시의 한 차도 아래 지하에서 열 수송관 점검 작업을 하던 강시구 지역난방안전 지부장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강 지부장과 또 다른 노동자 역시 맨홀 아래서 작업 중이었지만 도로 위에서 교통 통제를 하는 인력은 없었다. 차량은 강 지부장과 1m 남짓한 거리를 남겨두고 가까스로 멈췄다. 강 지부장은 “차가 (맨홀) 입구를 통과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최소 지하 작업인원 2명, 교통통제 인원 1명이 필요한데 회사는 적정 인력을 확보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강 지부장처럼 열 수송관 관리 등 지역난방 안전 점검을 하는 노동자들의 97% 가량은 안전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환경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송노조 지역난방안전본부는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지역난방안전 현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는 지역난방안전 근로자 220명중 158명이 참여했다. 지역난방안전은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자회사다. 2018년 12월 백석역 인근 열 수송관 파열로 시민 한 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뒤 안전관리를 전담하기 위해 설립됐다. 노동자들은 맨홀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 열 수송관을 점검하고 수리하는 일을 한다.
분석 결과를 보면 근로자의 17.1%는 1명이서, 80.4%는 2명이 한 조로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60.8%는 작업 시 최소 3인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박준선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회사는 2인 1조 작업이 안전한 조치라고 생각하지만 맨홀 아래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도로통제 인원, 밀폐 작업 감시 인원 등을 포함하면 최소 3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전 인력 확보 부족으로 인해 업무상 재해도 잦았다. 근로자 158명이 지난 한 해 동안 업무 관련 사고 또는 질병을 경험한 경우는 총 83건이었다. 상세 내역을 보면, 근골격계 질환(41건)과 작업 중 사고(21건), 교통사고(11건), 화상(6건), 질식(4건) 순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80kg이 넘는 맨홀 뚜껑을 두 명이서 들어 올리고 좁은 지하관 아래서 교대 없이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허리, 목 등의 부상이 뒤따른다고 설명한다.
심각한 경우 실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역난방 점검 근로자 최아무개(55)씨는 3년 전 맨홀 아래서 20분 이상 작업을 하다 산소가 부족해 실신한 적이 있다. 다행히 도로 위에서 작업하던 인원들이 많아 재빨리 구조됐지만 홀로 작업했다면 구조가 불가능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최씨는 “작업 전 유해가스와 산소 농도를 확인하지만 오래 작업을 하다 보면 급작스레 쓰러질 수 있다”며 “교대 작업을 해 위험을 줄이고 위급 상황 시 재빨리 구출할 수 있도록 최소 3인 이상의 인력이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회사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헤쳐가면서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한다”며 “적정 인력을 확보해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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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지역난방안전지부 회원들이 26일 오전 국회 앞에서 지역난방안전점검 현장 실태 조사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