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동문 앞에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과 공범 5명에게 중형이 선고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판결이 끝이 아니라, 성착취의 근간을 찾고 가해자들이 죗값을 받을 수 있게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며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6일 법원은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적용된 혐의 14개 중 성범죄 관련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조씨는 지난 4월 재판이 시작된 뒤 모두 131차례 반성문을 써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함께 기소된 공범 5명도 징역 7~15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에게 중형이 선고된 건 혐의의 중대성과 더불어 형법 114조의 ‘범죄단체조직죄’(범단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범죄나 불법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에 대해 ‘범죄단체’가 인정된 경우는 있었지만, 서로를 잘 모르는 온라인 공간에서 만들어진 조직을 ‘범죄집단’으로 인정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한다. 검찰은 조씨 등이 여성과 아동·청소년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는 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박사방’이라는 범죄집단을 조직했다고 보았다.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되면 징역 4년 이상의 처벌을 받는 범죄를 실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나 조직원은 해당 범죄에서 정해진 법정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박사방 활동을 여기에 적용할 경우, 성착취물 제작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구성원도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 등 범죄가 정한 법정형(징역 5년 이상~무기징역)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조씨가 웹툰 형식으로 만든 박사방 조직도 등을 증거로 제출했지만 공범들은 “조씨 혼자서도 범행을 할 수 있었고, 범죄 수익도 조씨가 모두 가져갔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조씨도 “조직도는 (이용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박사방이 ‘범죄집단’에 해당한다고 보고 범단죄를 인정했다. 범죄집단은 다수가 공동의 목적을 갖고 역할 분담을 하여 범죄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도록 갖춘 조직 체계를 뜻하는데, 이는 내부의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범죄단체’보다는 느슨한 조직 형태다. 재판부는 “‘박사방 조직’은 텔레그램상 ‘닉네임’으로 특정 가능한 다수 구성원으로 이뤄진 집단이다. 조씨와 공범들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배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범행만을 목적으로 조직을 구성했다. 이들이 참여한 박사방과 ‘시민의회’, ‘노아의 방주’ 방은 모두 조씨가 만든 성착취물을 유포하고, 조씨를 추종해 지시를 따른다”며 범죄집단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으로 조씨 또한 ‘조직적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 불리한 양형사유로 인정돼 형량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조씨와 공모한 ‘태평양’ 이아무개(16)는 성착취물을 영리 목적으로 반복적으로 유포한 혐의로만 기소됐지만 ‘범죄집단’ 구성원임이 인정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죄의 법정형 기준으로 장기 10년 단기 5년형을 선고받았다. 또 조씨에게 가상화폐를 지급해 그 대가로 성착취물을 받은 뒤 또 다른 성착취물 제작에 가담한 유료회원 임아무개(33)씨와 장아무개(40)씨도 박사방 조직 구성원으로서 활동한 것으로 보고 각각 징역 8년과 7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가상화폐의 제공·취득은 일련의 성착취 범행이 이어지고 반복된 직접적이고 주요한 동기”라고 짚었다. 가상화폐라는 경제적 유인을 제공한 유료회원들도 박사방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이는 박사방 이용자들을 어느 수준까지 처벌할 수 있을지에 관한 판단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박수진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에서 온라인 범죄조직의 집단성이 인정된 것은 처음”이라며 “피고인들은 박사방이 ‘조직’이라는 인식이 없었다며 부인해왔는데 이 점이 유죄로 인정받았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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