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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신랑은 3년 만에 다시 육체노동자로 돌아갔다

등록 2020-12-05 09:03수정 2020-12-06 12:43

[토요판]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21. 노동의 이름에 찬사를

드로잉 작가, 신랑의 힘겨운 일
삶의 쓸모 지키려는 경건한 노동

이면지 뒤에 그린 신발 그림 한장
일상의 순간들 마법처럼 되살아나

서로 글 쓰고 그림 그리게 하는 일
다른 삶의 발자취 남기긴 했지만

프리랜서 작가는 다시금 현장으로
노동자 소박한 꿈 먼저 지켜지길
2017년 11월 신랑의 그림. 담배도 피우지 않고, 의미없는 농담에 함께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신랑은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주위에 있는 종이 아무 데나 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박조건형 그림, 김비 제공
2017년 11월 신랑의 그림. 담배도 피우지 않고, 의미없는 농담에 함께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신랑은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주위에 있는 종이 아무 데나 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박조건형 그림, 김비 제공

드로잉 작가인 마흔다섯 나의 신랑은 이제 다시 아침 일곱시의 출근을 시작했다. 이번 책을 내고 나면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그러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나는 내심 바라고 있었다. 어느새 네번째가 되어버린 그와 내가 같이 만든 책이 행운이 되어, 최소한 육체와 일상을 통째로 갈아넣는 노동 속에 스스로의 삶을 밀어넣을 필요 없기를 바랐다. 이기적인 마음이란 걸 알지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우리의 것이기를 간절히 소원했음을 나는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신랑은 다시 육체노동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2010년에서 2017년까지 7년 반 동안 그는 폐유를 수거해 정제하는 공장에 다녔다. 몸을 써야 하는 노동자의 삶이 대부분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의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침 7시까지 회사에 도착해야 해서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는데, 사계절 바깥에서 해야 하는 근무였다. 소규모 폐유 공장의 설비들은 안전상의 이유인지 모두 외부에 있었고, 그 안에 새로운 기름을 채우거나 기름의 점성을 파악해 분리하고 정제하는 일이 그가 하는 작업이었다. 보일러 설비가 바깥에 있다 보니 정비하고 관리해야 할 일도 많았고, 대량의 기름통을 운반하고 정리하는 일도 직원들이 해야 했다. 기름의 양이 너무 많아 공장으로 운반해 오지 못할 경우에는 외근도 나가는 모양인데, 모텔에서 기름때 묻은 모습을 찍어 보내올 때마다 마음이 짠했다. 폭염이든 혹한이든 외부의 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된 그의 근무 환경은 내 눈에는 너무도 가혹해 보였다.

그런데도 그를 제일 힘들게 한 것은 힘든 노동이 아니라 그에게 일을 가르쳤던 선임 근무자 한 사람과의 관계였다. 목소리를 높여 싸우고 주먹다짐까지 했지만 사사건건 트집 잡고 괴롭히는 그와의 시간을 신랑은 가장 못 견뎌했다. 그 사람의 삶에 어떤 억압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누구도 싸잡아 비난하지 못하는 온순한 사람이었던 신랑조차 그를 향해서는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아무리 힘든 노동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졌지만, 남성 우월주의와 군대 문화가 현장의 일부로 자리해버려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곳에서의 노동은 신랑에게는 또 다른 억압이었다.

2012년 어느 날 이면지 뒤편에 그린 그림 한장을 보여주었는데, 안전화를 신은 자신의 두 발을 그린 그림이었다. 팽팽하고 긴장되었던 노동의 시간에 잠시 구멍이 나는 순간. 도구나 부품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일상을 그림 한장으로 길어올린 순간. 박조건형 그림, 김비 제공
2012년 어느 날 이면지 뒤편에 그린 그림 한장을 보여주었는데, 안전화를 신은 자신의 두 발을 그린 그림이었다. 팽팽하고 긴장되었던 노동의 시간에 잠시 구멍이 나는 순간. 도구나 부품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일상을 그림 한장으로 길어올린 순간. 박조건형 그림, 김비 제공

신랑의 힘겨운 노동의 이유

여름이면 신랑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시커멓게 탄 얼굴로 헉헉거리며 바닥에 드러눕고야 말았다. 찬 수건을 그의 몸에 문지르고 차가운 음료수를 그의 앞에 내밀면서, 제발 다른 일을 알아보자는 말이 턱밑까지 치밀었다. 우린 아직 젊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니 최소한의 노동으로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게 더 현명한 일이 아니냐는 입바른 말들이 머릿속을 굴러다녔다. 그런데도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것은 힘겨운 노동의 일상을 통해 그가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언지 알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부모고, 자식인, 마주 웃어줄 수 있는 존재가 힘겨운 노동을 버티는 힘이겠지만, 신랑에게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오래도록 우울증을 앓아왔던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이었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에게 쉽사리 그만두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자기 삶의 쓸모를 그 힘겨운 노동을 통해 지켜가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담배도 피우지 않고, 의미 없는 농담에 함께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신랑은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주위에 있는 종이 아무 데나 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이면지 뒤편에 그린 그림 한장을 보여주었는데, 안전화를 신은 자신의 두 발을 그린 그림이었다. 낡은 신발 그림도 아름다웠지만, 잠시 잠깐의 휴식 시간에 땀에 젖은 몸으로 자신의 발을 그렸을 신랑의 모습이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았다.

팽팽하고 긴장되었던 노동의 시간에 잠시 구멍이 나는 순간. 도구나 부품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일상을 그림 한장으로 길어올린 순간.

나는 신랑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스스로 일하는 현장을 그림으로 옮겨보라고 말했다. 아주 소중하고 멋진 기록이 될 것이라고, 나의 자랑 ‘과장 어법’으로 신랑의 그림을 들고서 연신 환호성을 질러주었다. ‘멋지다’고 엄지를 추켜세웠다. 물론 그 한마디는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2015년 여름 신랑은 기어이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자기가 힘들다면 괜찮다고, 우리 두 사람 먹고사는 일쯤은 무엇을 해서든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다독였다. 하지만 그는 다시 마음을 바꾸어 출근을 했고, 그 후로 몇년을 더 다니다가 2017년 초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설 명절 전까지만 일을 하고 그만두겠다는 말을 직장에 전했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그동안 그 힘겨운 일을 해낸 스스로를 칭찬해야 한다고 했다. 올 한해는 쉬어도 괜찮다고, 조금은 소소하고 소박한 삶을 꾸려보자고 말했다. 신랑도 홀가분해졌는지 그 후 며칠 동안 오랜만에 푹 자기도 했고, 마음껏 즐기며 그림을 여러 장 그리기도 했다. 지게차 면허 학원에도 다니기 시작했는데 강의는 다행히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했으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어선지 여전히 힘겨운 노동의 일상 중에도 조금은 가벼워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설 명절이 다가오기도 전에 이번에도 그는 다시 또 회사에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나는 그때에도 당신의 결정이 그렇다면 나는 괜찮다고 했다. 새로운 시작에 뛰어드는 일도 힘들지만,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일 또한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만큼 당신의 선택은 용기 있는 것이라고 그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2010년에서 2017년까지, 7년 반 동안 그는 폐유를 수거해 정제하는 공장에 다녔다. 몸을 써야 하는 노동자의 삶이 대부분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의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김비 제공
2010년에서 2017년까지, 7년 반 동안 그는 폐유를 수거해 정제하는 공장에 다녔다. 몸을 써야 하는 노동자의 삶이 대부분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의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김비 제공

프리랜서, 달라진 노동의 성격

신랑의 퇴사는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외근을 나갔다가 사고로 머리를 다쳐 꿰매게 되었는데, 머릿속에 혹이 발견되어 검사를 진행했더니 뇌종양이었다. 다행히 종양의 외부에 달걀 껍질 같은 막이 가두고 있어 더 이상 자랄 것 같지 않으니 이대로 머릿속에 종양을 가둔 채 살아가도 괜찮다는 진단을 받았다. 신랑은 그 과정에서 7년 넘게 몸담았던 회사가 보여준 태도에 분개하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직장을 떠날 수 있었다. 다른 직장을 알아보려 하다가,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아까워 한번 프리랜서로 사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고, 다행히 좋은 기회가 주어져 책도 여러 권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프리랜서의 노동은 또 다른 방식의 버티는 일이었다. 신랑의 그림을 좋아해주고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니 기회가 부족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는데도 그랬다. 특히 프리랜서의 삶은 주체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일상에 전략을 세우는 일이 중요한데, 신랑은 무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난감해했다.

똑같은 프리랜서였던 나는 오랜 무명 생활에 이골이 나 직장인처럼 집에서 집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생활하는 편인데, 신랑에게는 너무 다른 노동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힘겨워 보였다.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으니 같이 책상으로 출근을 하고 같이 밥을 먹으며 조금은 규칙성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같이 책을 낸 만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방향을 정해도, 결국 프리랜서의 일은 작업을 하는 당사자만의 몫이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출퇴근 시간이나 규칙성이 아니라 달라진 노동의 성격에 적응을 하는 일이었다.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동료로서, 박조건형의 그림이 더 많은 걸 기록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림은 잘 모르지만 그의 그림에는 정교함이나 견고함보단 오히려 그 반대쪽에서 전해지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우리가 무수히 흘려보낸 일상의 순간들이 그의 손안에서 마법처럼 그림 한장으로 탄생되는 걸 보면서 나는 그의 노동이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그의 삶에 의미있는 발자취가 되지 않을까 설레었다. 이 사회에 지워진 모든 노동의 이름에 새로운 의미와 시선을 부여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부족한 우리 두 사람이 그래서 그렇게 만나 서로 그림을 그리게 하고, 글을 쓰게 하는 둘이지 않았을까, 그때 나는 아마도 너무 큰 꿈을 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 꿈이라도 없었다면 우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나는 내가 꾸었던 어쩌면 허황되었을지도 모르는 그 꿈을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 같이 행복해져요.’, ‘돈 많이 벌어서 우리 자식들 공부 시킵시다.’ ‘내 손주 용돈 줘야지.’ 그런 사소하지만 귀한 꿈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기름의 양이 너무 많아 공장으로 운반해 오지 못할 경우에는 외근도 나가는 모양인데, 모텔에서 기름때 묻은 모습을 찍어 보내올 때마다 마음이 짠했다. 김비 제공
기름의 양이 너무 많아 공장으로 운반해 오지 못할 경우에는 외근도 나가는 모양인데, 모텔에서 기름때 묻은 모습을 찍어 보내올 때마다 마음이 짠했다. 김비 제공

사회를 떠받치는 노동자를 위하여

그리고 이제 우리의 그 꿈은 일단락되었다. 3년 반 동안 신랑의 프리랜서 예술 작가로 사는 실험은 이제 끝이 났고, 그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다. 이전 직장보다 한시간 늦은 출근 시간 덕분에 그는 좀 더 푹 잘 수 있었고, 출근 준비를 하는 그의 콧노래 소리를 들으니 그에게는 훨씬 더 안정된 일상인 모양이었다.

구직 신청을 하고 생각보다 빨리 일자리를 구했다고 생각했는데 신랑이 새로 얻은 직장은 ‘유해 화학물질’을 운반하는 일이었다. 여전히 드럼통을 굴리는 일이었지만, 일주일에 5일 일하고 공휴일에는 모두 쉴 수 있으며, 주된 업무가 운전하는 일이라 바깥에서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신랑은 좋아했다.

나는 다시 또 그의 환한 얼굴 앞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우와, 잘됐다!’ 과장 어법을 자랑하며 또 손뼉을 쳤지만, 조금 속상하고, 아니 좀 많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아니 그냥 아프기보단 더 오래 욱신욱신 쑤셨다.

삶은 곧 노동이니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노동자의 소박한 꿈들이 제일 먼저 지켜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어느 택배노동자의 죽음이 산재 판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는다. 그동안 묵묵히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던 필수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소식들이 요즘 들어 더 자주 눈에 띈다. ‘사망’이나 죽음’이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로 갈음되어서는 안 되는 어떤 안간힘이, 아주 길고 고독한 싸움이 끝나버렸다는 소식을 우린 너무 짧게 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돈값을 앞세워 어떤 노동은 헛짓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내 노동의 돈값도 알고 보면 다른 노동에 힘입어 가능한 것임을 모른 채 우린 지금 나의 삶이 나 하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믿는 어리석은 환각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아마도 올해 너무 많은 꿈들이 무너졌으리라. 너무 많은 노동이 중단되고, 그 노동을 떠받치고 있던 주변에 마음들이 다치고 상처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재난 사회가 잃어버린 평온함이 당신들의 노동 덕분이었단 걸 우린 알고 있으니, 간단히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마스크로 가려져 차마 내보일 수 없지만, 모두들 당신들의 노동에 찬사를 보내는 중이라고 나는 믿는다.

▶ 김비.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 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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