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수집 증거’라며 화장실 불법촬영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이 ‘수사기관이 적법절차를 실질적으로 침해하지 않았다’며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불법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 처벌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ㄱ씨에게 ‘증거물이 위법하게 수집됐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ㄱ씨는 2013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경기도 의정부시의 노래방 남녀 공용화장실에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총 296회 불법촬영을 했다. 경찰은 ㄱ씨의 컴퓨터·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고 ㄱ씨는 ‘디지털기기 탐색, 복제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문건에 서명한 뒤 압수수색 과정을 참관하지 않았다. ㄱ씨의 국선변호인은 이런 통보를 받지 못해, 경찰의 압수수색은 피고인 쪽 참여 없이 진행됐다.
원심은 “설령 ㄱ씨가 수사기관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어도 수사기관은 국선변호인에게 (영장) 집행 일시와 장소를 통지하는 등 위 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했어야 한다”며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이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할 땐 피압수자 또는 그 변호인이 집행에 참여할 수 있다’는 조항을 위반했기 때문에 그렇게 수집된 증거물을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 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았다”며 원심과 다르게 판단했다. 대법원은 “ㄱ씨의 국선변호인이 선정될 땐 이미 경찰이 컴퓨터 탐색을 어느 정도 진행한 상태였고, 국선변호인도 영장 집행 상황을 문의하거나 과정 참여를 요구한 바 없다”며 “오히려 이 사건 영장 집행을 통해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형사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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