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전쟁 없는 세상’에서 활동 중인 시우(활동명)씨의 모습. 시우씨 제공
“단순히 병역을 이행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본인의 처지에 비춰 싫다는 것이 아니라 병역을 거부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피고인은 그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검찰 신문이 끝난 뒤 예상하지 못한 재판부 질문에 피고인 시우(33·활동명)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금 더 호소력이 있고 설득력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되면 좋겠지만,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병역거부자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마지막 말을 잇던 시우씨는 순간 눈물이 울컥했다.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면서 현역 입영을 거부한 일반 병역거부자로서 처음 무죄를 선고받은 시우씨는 지난 10일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약 3년의 세월을 버티며 나름대로 돌파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과 차라리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을 때 수감되는 것이 오히려 앞으로 삶을 꾸려 나가는데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말하곤 하는데 스스로 다독이면서도 자신이 없어졌던 순간이었다.”
“피고인은 무죄다. 돌아가도 된다.” 의정부지법 형사항소4-1부(재판장 이영환)가 지난달 26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시우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분30초였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선고 전 변호사가 ‘구속될 수도 있으니까 미리 주변 사람들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도 한 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시우씨는 ‘약 3년의 세월이 말 한두마디로 간단히 정리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허탈했다. 법정에 함께 있던 동료, 친구, 가족은 눈물을 흘렸다. 2018년 1월 시작한 1심은 단 한 차례 공판이 열린 뒤 한 달도 채 안 돼 유죄가 선고됐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대법원 무죄 판결 이전에 병역거부자에 대한 선고는 사실상 ‘정찰제’에 가까웠다. 병역을 왜 거부했는지, 그 고민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상세히 설명해도 답은 ‘징역 1년6개월’로 정해져 있었다. 시우씨는 1심 선고 때 법정구속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일 따름이었다. 고민을 말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유죄 선고를 받은 시우씨는 항소를 결심했다.
시우씨가 항소한 지 약 4개월이 지난 2018년 6월 헌재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어 같은 해 11월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판결 다음 날 시우씨에게 항소심 소환장이 날아왔다. 그러나 그 뒤 2019년 3월 예정된 두번째 재판은 ‘’게임회사 가입 여부 조회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미뤄졌고 지난 6월에야 열렸다. 1년5개월여만에 재판 재개였다. 그사이 비슷한 시기에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의 재판을 지켜봤던 시우씨는 “대법원 판결 뒤에도 검사는 ‘진정한 양심’을 가리기 위해 양심의 내용까지 심사하려 했다. 특히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건에선 더욱 그랬다”고 했다. 특정 종교 위주로 정형화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이미지에 얼마나 가까운지 따지려다 보니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 비춰 ‘비종교’, ‘비여호와의 증인’은 어떤 양심의 내용을 가졌는지 그 타당성을 평가하려 든다는 것이다.
검찰은 그에게도 “5·18 광주민주항쟁의 경우 시민들이 총을 든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우리가 일본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까지 이뤄지게 된 계기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나라가 군사력 자체가 약했기 때문에 일본에 침략을 당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냐”고 집요하게 물으며 ‘양심 검증’을 했다. 시우씨는 “양심의 내용을 심사하려는 질문이기도 하고 양심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기보다 이를 기각하기 위한 질문이라는 점에서 다소 악의적이기도 했다. 질문에 대한 답변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고민하게 된 과정을 충분히 보여주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어 “여전히 정답과 오답, 진짜와 가짜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유무죄 판단이 필요한 순간도 있겠지만 다양한 양심의 색깔과 모양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병역거부자가 어떤 삶의 맥락을 거쳐 왔는지 살펴봤을 때 구체적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재판부도 “(시우씨) 사고의 흐름은 국군에 대한 편향적인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나 병역거부 사유에 있어 ‘정당한 이유’의 존부 판단이 양심 내용의 타당성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의 기독교 신앙과 퀴어 페미니즘 신념이 얼마나 발현됐고 어떤 위치를 차지했는지가 중요한 근거가 된 것이다. 재판부는 시우씨가 종교 동아리나 사회 참여적 선교단체, 단체 ‘전쟁 없는 세상’ 등에서 참여한 활동과 특강, 칼럼, 논문 등을 폭넓게 인정해 무죄 판단을 내놨다. 병역거부자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양심을 형성하고 병역거부라는 신념이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뭔지 판단한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성소수자로서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 문화에 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학 입학 뒤 사회 참여적 선교단체 등에 들어간 그에겐 신앙생활만큼이나 제주평화순례 등 전쟁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한 사회적 종교생활이었다. 퀴어 페미니즘을 연구하며 사람들과 어떻게 평등하고 정의로운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고민은 차별과 위계 중심의 군대 체제를 마주하며 깊어졌고 전쟁은 사회적 약자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는 결론에 닿았다. 시우씨는 “특정 국가나 민족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참상이 발생했을 때 어떤 사람이 어려운 위치에 놓이는지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군사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서사 대신 사회의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군사훈련을 거부한 것이다.
그가 병역을 거부했던 2017년은 종교적·정치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대가로 사실상 1년6개월의 징역형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에게 병역거부는 앞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의 삶을 포개 보며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내린 씨앗이 자라 자연스럽게 우거진 결론이었다. 시우씨는 “병역거부의 대가를 짊어질 마음의 준비였을 수도 있고, 전과자로서 직업에 대한 고민이나 주변에 어떻게 병역거부 의사를 알릴지에 대한 고민이 길어졌지만 언제까지 미래의 문제로 남겨둘 수는 없어 서서히 쌓여오던 고민이 무르익고 입영 시기가 다가왔을 때 결정을 내렸다. 병역거부는 개인이 짊어져야 할 몫이지만, 한 사람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않으려고 한다. 무죄를 받는다고 해서 병역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기여하는 또 다른 형태로 봐달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의 상고로 그의 법정투쟁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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