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된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에게 발각된 지 고작 13개월. 우리는 8천만명 넘는 인간 속에 거처를 마련했다. 우리의 전략은 절묘했다. 전염력은 강력하지만, 치사율은 숙주가 너무 많이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높였다. 특히 무증상 감염자들이 왕성하게 우릴 뿜어대게 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성공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인류는 빨라도 4년 넘게 걸리던
백신을 불과 1년 만에 만들었다. 백신이 집단면역 수준으로 접종되려면 2021년 하반기는 되어야 한다. 그사이 2020년 한 해 동안 우릴 방해했던 장애물들만 잘 공략하면 된다.
2020년은 인간이 인류 역사상 가장 손 위생에 신경 쓴 한 해다. 인간은 식당, 카페, 엘리베이터 입구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손 소독제를 비치하기 시작했다. 에탄올이 80% 이상 함유된 손 소독제를 묻혀 손을 비비면 15초 만에 우리는 사멸한다. 고약한 상대다. 하지만 인간 중 상당수는 여전히 화장실을 나올 때도 손을 잘 안 씻는다. 손가락 끝에만 손 소독제나 물을 바르고 마음의 위안만 얻는다. 우리를 살리는 우군들이다.
침방울(비말)이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다. 말 그대로 물아일체다. 인간들은 자신이 보는 드라마가 ‘비말의 숲’ ‘비말의 남자’ ‘여자의 비말’로 보인다고 한다. 우리가 비말에 몸을 맡긴 채 에어컨 바람을 타면 6m가 넘는 거리를 활보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재채기를 할 때만 마스크를 벗는 특이한 사람들이 있다. 고맙다.
그래, 영원한 숙적은
마스크다. 효과가 즉각적이다. 한국의 한 교회에서는 확진자 3명이 이틀 동안 700여명과 접촉했지만 단 한 명도 추가로 정복하지 못했다. 모두 마스크를 썼기 때문이란다. 한국에만 지난 10개월 동안 64억2600여만장의 마스크가 뿌려졌다. 한장 한장이 방해물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턱만 가리는 턱스크족, 코는 내놓는 코스크족이 있다.
지난 3일 수험생들이 수학능력시험을 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우리가 폐쇄된 공간에서 비말을 통해 빠르게 전파된다는 사실이 알려진 다음부터,
칸막이가 인간의 학교와 식당, 사무실을 뒤덮기 시작했다. 한국의 수능시험은 인간들의 집요함의 절정이었다. 재활용 논란 속에 49만개가 넘는 아크릴 재질 반투명 칸막이를 설치했다. 야구장 5개를 덮을 수 있는 양이다. 우리는 고대했던 수능 공략에 실패했다.
화상회의는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다. 우리가 인간이 떼로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출몰하자 인간들은 화상을 통해 모임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직장 업무회의 정도나 하더니, 점점 뻔뻔해져 신나게 마시고 떠드는 동창회나 송년회까지 화상으로 하기 시작했다. 웃옷만 잘 걸치고 잠옷바지 차림으로 화상 소개팅을 하는 사람도 있다. 줌개팅이라고 한단다. 원격으로라도 짝을 찾겠다는데, 줌개팅은 우리도 차마 망칠 방법이 없다.
인간들은 백신을 떠들지만 우리의 2021년은 낙관적이다. 백신 접종이 본격화하면 인간들은 마스크를 벗기 시작할 것이다. 손 씻기를 잊고, 칸막이는 치우고, 대규모 모임은 재개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집단면역에 이를 때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훼방 놓지만, 호모 마스쿠스(마스크를 쓴 인간)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달했다. 방심의 순간은 온다. 코로나19 대잔치 팬데믹은 끝나지 않았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