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자영업자들의 생태계가 무너지면서 기존 점포는 철거 비용 때문에 폐업하지 못하고 새로 가게를 차리는 사람도 없어, 주방기기를 사고파는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가 거래가 없어 한산하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파는 사람은 있는데 사는 사람이 없다. 60대 ㄱ씨가 운영하는 철거업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0~40% 줄었다. “(철거하며 가져온) 집기를 파는 것도 매출인데, 많이 줄었어요. 원래 폐업하는 가게랑 오픈하는 가게 숫자가 얼추 맞았단 말이에요. 근데 요새는 폐업만 하지 오픈을 안 해요.” 그는 최근 업소용 ‘45박스(1100ℓ) 냉장고’를 고물상에 ‘단돈 2만원’에 팔았다. 도무지 팔 곳을 찾지 못해서다. “폐업하는 사람들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요.”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늘며 철거업체가 ‘씁쓸한 호황’을 누렸지만, 해를 넘기며 철거업체마저도 불황에 접어들었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철거비용이 부담스러운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망설이고, 개업하는 가게가 줄다 보니 철거하며 가져온 집기를 팔 곳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8일 <한겨레>가 취재한 철거업체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철거 → 개업’이라는 업계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철거업체들은 철거 문의는 많아도 실제 철거로 이어지는 경우가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철거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에 8개 지점을 두고 철거업체를 운영하는 ㄴ씨는 “자영업자들의 철거 문의 자체는 많이 들어온다. 그런데 실행을 안 한다. 10명한테 전화가 오지만 2~3명만 진행한다. 철거비용을 들으면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라고 전했다. 서울과 경기를 주로 다니는 철거업체 사장 ㄷ씨도 “예전이면 천만원 받고 철거해줄 견적인데 돈이 없다고 자영업자들이 사정해서 800만원 받고 철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영업자들이 보증금을 까먹으며 버티고 있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상점에 붙은 '점포정리' 안내문. 연합뉴스
개업하는 가게가 줄면서 철거 때 가져오는 중고 집기를 팔 곳을 찾는 일도 어려워졌다. ㄴ씨는 “예전엔 식당 철거 뒤 나오는 냉장고나 식기세척기를 중고로 팔면 100만원은 받았다. 지금은 매물이 너무 많이 나왔고, 살 사람도 없다. 요새는 20만원 받고 팔면 다행”이라며 “개업하는 자영업자가 없다 보니 매물만 쌓이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폐업이 급증한 대구에서 주방집기를 대량 매입한 ㄹ씨도 “집기가 너무 많이 쌓였다. 창고가 미어터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를 보면, 일반음식점의 경우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폐업하는 가게가 개업하는 가게보다 1000개 이상 많았다. 중고집기를 팔기 어렵다 보니 오래 쓴 매물을 가져오는 게 꺼려질 때도 있다고 한다. 오래 쓴집기는 잘 안팔리기 때문이다. ㄱ씨는 “철거를 시작하기 전, 먼저 현장에 가서 볼 때 2~3년 된 중고매물이 있으면 좋지만 5년이 넘는 매물이 많으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일부 철거업체들은 다른 자영업자들처럼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ㄹ씨는 “하도 집기가 안 팔려 주변 철거업체 동료들이 폐업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도 정부 소상공인 대출 받아가면서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ㄷ씨는 “철거업체가 돈이 된다는 말에 후발업체도 늘었다. 점점 힘들어진다”고 답답해했다.
호황이든 불황이든 매일 같이 현장에서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대면하는 철거업자들의 마음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더 불편하다. “남의 불행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지만 가슴이 아파요. 하루 빨리 장사가 잘 돼 더 좋은 집기로 바꾸려 하는 자영업자들을 만나고 싶어요.”(ㄱ씨) “자영업자들이 살아야 우리도 살아요.”(ㄹ씨)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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