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이 걸어온 길
![1992년, 시위 도중 백골단의 구타에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 1주기 추모식. 민족사진연구회 제공 1992년, 시위 도중 백골단의 구타에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 1주기 추모식. 민족사진연구회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40/427/imgdb/original/2021/0215/20210215500995.jpg)
1992년, 시위 도중 백골단의 구타에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 1주기 추모식. 민족사진연구회 제공
내 살아온 꼴은 한마디로 땅불쑥해. 땅이 평평하지 않고 툭툭 튀어나온 꼴이니, 특이하다 말이지. 그 큰 줄기를 뽑아보니 통일 싸움꾼이 하나요, 이야기꾼이 둘이야. 그래서 그 특이한 내력을 남겨볼라 그래!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9.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1933년 1월 24일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자락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1945년 해방 뒤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에서 서울로 내려왔다. 해방 이후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백 소장 가족도 남북으로 나뉘어 살게 됐고, 갈라진 집안을 잇겠다는 일념으로 통일운동을 시작했다. 유년시절 그는 초등학교만 다니고 혼자 공부했음에도 시와 소설 등 문학작품을 읽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해외유학장려회’ 첫 수혜자로 해외 유학을 권유받았지만 “조국을 두고 혼자 유학을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1950년, 열여덟 살의 백기완 소장. 학교를 다니지 못해 사진으로나마 교복을 입었다고 한다.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1950년, 열여덟 살의 백기완 소장. 학교를 다니지 못해 사진으로나마 교복을 입었다고 한다. 통일문제연구소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82/397/imgdb/original/2021/0215/20210215500996.jpg)
1950년, 열여덟 살의 백기완 소장. 학교를 다니지 못해 사진으로나마 교복을 입었다고 한다.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여든다섯 살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 소장. 정택용 작가 여든다섯 살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 소장. 정택용 작가](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1/451/imgdb/original/2021/0215/20210215500994.jpg)
여든다섯 살의 백기완 통일문제연구 소장. 정택용 작가
![2016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노동자생존권을 요구하며 차려진 광화문캠핑촌에서 예술 노동자들과 함께한 백 소장.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2016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노동자생존권을 요구하며 차려진 광화문캠핑촌에서 예술 노동자들과 함께한 백 소장. 통일문제연구소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40/427/imgdb/original/2021/0215/20210215500993.jpg)
2016년 문화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노동자생존권을 요구하며 차려진 광화문캠핑촌에서 예술 노동자들과 함께한 백 소장. 통일문제연구소 제공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141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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