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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달동네·새내기·동아리·모꼬지…백기완 선생이 처음 사랑한 우리말

등록 2021-02-15 12:06수정 2021-02-15 18:22

시집, 영화극본 출간에 직접 무대에 서기도
김지하·김민기부터 전인권·송경동까지
문화예술인들이 그를 따르며 영감과 자극 얻어
2016년 2월 백기완 선생(왼쪽)과 송경동 시인이 영화 <동주>를 관람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6년 2월 백기완 선생(왼쪽)과 송경동 시인이 영화 <동주>를 관람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백기완 선생이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작사가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노래는 5·18 광주항쟁 이듬해인 1981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들불야학’ 동료였던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든 노래극 <넋풀이>에 삽입된 합창곡으로, 김종률이 작곡했고 소설가 황석영이 백 선생의 장시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 일부를 변형해서 가사로 썼다. 원작은 백 선생이 1982년에 비매품으로 냈던 첫 시집 <젊은 날>에 실려 있다.

백기완 선생은 <젊은 날> 말고도 <이제 때는 왔다> <백두산 천지> <아! 나에게도> <해방의 노래 통일의 노래> 등의 시집과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 <부심이의 엄마 생각> 같은 산문집, <장산곶매 이야기> <따끔한 한모금> <버선발 이야기> 같은 옛이야기책 등을 펴냈고, 2009년에는 <한겨레> 연재를 거쳐 자전 산문집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어려서는 축구선수가 꿈이었고 젊은 시절에는 영화감독을 꿈꾸었다는 그는 <단돈 만원> <대륙> <쾌진아 칭칭 나네> 같은 영화극본 역시 책으로 내놓았다.

생전 백기완 선생 주변에는 통일·노동운동가들과 함께 문화예술인과 문화 분야 활동가들이 모여들었다. 1960~70년대 서울대 문화운동을 이끌었던 시인 김지하와 미술사학자 유홍준, 춤꾼 이애주, 소리꾼 임진택, 가수 김민기를 비롯해 화가 신학철, 가수 정태춘·전인권 등에서부터 최근에는 영화인 양기환과 시인 송경동 같은 예술인들이 그를 따랐다. 문학을 비롯해 문화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있는 이 예술가들은 백 선생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영감과 자극을 얻었다. 그의 주변에 이처럼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든 까닭은 그가 설파하는 특유의 민족미학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학 일반에 관해서든 예술의 각 장르에 관해서든 나름의 미학을 지니고 있었고 그 핵심은 ‘조선 고유’의 양식으로 사회 변혁을 이끄는 예술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백 선생의 <장산곶매 이야기>가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 서두를 장식하며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상징한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14년 한국작가회의 창립 40주년 기념식 때 그가 ‘작가의 벗’으로 꼽혀 감사패를 받은 배경에는 문학과 문화 전반에 관한 그의 이런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

사석에서도 이야기와 노래, 호통과 눈물을 곁들이며 공연에 가까운 이야기 마당을 펼치고는 했던 백기완 선생은 시와 노래, 이야기 등으로 몇 차례 정식 무대 공연을 마련하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 소설 <따끔한 한모금>을 소극장에서 온몸으로 구연하는 ‘말림’(2007년), 흘러간 유행가를 직접 부르며 그에 얽힌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이야기’ 공연(2009년), 그리고 2013년에 있었던 ‘백기완의 시 낭송의 밤’ 등이 대표적이다.

‘문화인 백기완’의 성취와 기여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지극한 우리말 사랑이다. 그는 평소 말과 글에서 한자어와 영어, 일본어 같은 외래 어휘를 삼가고 순우리말을 살려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 모꼬지 같은 말들을 처음 만들어 쓴 것이 선생이었다. 그가 쓴 책들에는 이와 함께 땅별(지구), 한살매(인생), 배내기(학생), 덧이름(별명), 새뜸(뉴스), 들락(문), 눌데(방) 같은 어여쁜 순우리말들이 가득한데, 그중에는 그가 어려서부터 어른들한테서 들어 익힌 것도 있지만 그 스스로 애써 궁리해서 만든 것들이 적지 않다.

백기완 선생은 2016년 2월22일 사랑하는 후배 송경동 시인과 함께 영화 <동주>를 관람했다. 영화감독이 된다면 가장 먼저 윤동주와 송몽규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에게 송경동 시인이 말했다. “영화 끝부분에서 윤동주가 창살 밖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특히 마음에 남았어요. 선생님과 함께 본 그 별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언젠가는 선생님을 그 별처럼 그리워할 때도 오겠구나 하는 생각에 영화를 보면서도 마음이 복잡해지고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로부터 5년 뒤, 백기완 선생은 밤하늘의 별이 되었고 남은 이들은 별을 보며 생전의 선생을 그리워하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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