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의 외형상 모습이 비장애인처럼 보이더라도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다면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원이 신체적 장애가 있는 피해자의 상태를 판단할 때 비장애인의 기준에서 장애 정도를 단정해선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013년 10월부터 3개월 동안 지체장애 3급인 여성을 성폭행하고 강제추행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ㄱ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대법원은 “(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폭력 범죄 가중처벌을 규정한) 성폭력 처벌법 제6조의 취지는 성폭력에 대한 인지능력, 대처능력 등이 비장애인보다 낮은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비장애인의 시각과 기준에서 피해자의 상태를 판단해 장애가 없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앞서 원심은 이 사건 피해자를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정도의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ㄱ씨를 가중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ㄱ씨를 장애인 대상 성범죄 혐의로 가중처벌하려면 피해자가 비장애인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정도의 장애가 있어야 하는데, 피해자의 외형이나 지능, 평상시 생활모습에 비춰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장애가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에서 규정한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이란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 등의 문제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한다”며 “장애와 관련된 피해자의 상태는 개인별로 그 모습과 정도에 차이가 있다. 신체적 장애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상태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날 판결에 대해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범죄를 가중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의 취지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의 의미와 범위, 판단 기준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최초의 판결”이라며 “성폭력처벌법으로 보호받는 장애인 여부를 판단할 때 자칫 비장애인의 시각과 기준에서 이를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되고, 해당 피해자의 상태를 충분히 고려할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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