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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호텔예약 앱 ‘환불 불가’ 약관, 법원 “정당하다”지만…

등록 2021-03-08 18:36수정 2021-03-08 18:40

공정위 “소비자에 과도한 부담”
아고다·부킹닷컴에 시정명령
법원 “13% 싸, 부당한 부담 아냐”
잇따라 두 업체 승소 판결
“이익 견줘 전액 위약금은 과도”
소비자단체 반발, 공정위도 상고
지난해 12월27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입국자들에게 동선을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27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입국자들에게 동선을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렴하게 국외 여행을 떠나려고 했던 게 화근이었다. 지난해 유럽 여행을 계획한 김아무개(32)씨는 한 외국계 숙박 예약 앱(애플리케이션)으로 호텔을 예약했다. 하지만 그해 초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에 발목을 잡혔다. 여행을 포기하고 호텔 예약을 취소하려고 하자, 호텔과 숙박 예약 플랫폼 쪽은 “환불이 어렵다”고 했다. ‘환불 불가’를 조건으로 내건 상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씨는 “코로나19로 불가피했다”고 호소해 어렵사리 환불을 받았지만 이런 사례는 이례적일 뿐 아니라, 김씨에게도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됐다. 플랫폼과 호텔 쪽에 수십 차례 전화하고, 거듭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의 수고와 번거로움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잠깐의 실수로 수십만원을 날린 이도 있다. ㄴ씨는 몇해 전 한 외국계 숙박 예약 앱으로 일본 호텔을 예약했던 그는 어른 5명, 아이 4명 모두 9명이 묵을 방을 예약하려 했지만, 실수로 전체 인원을 5명으로 설정해 예약한 것이다. 예약 확인서를 보고 실수를 깨달은 그는 결제를 취소하고 다시 예약하려 했지만, 숙박 예약 업체와 호텔은 ‘환불 불가’ 조건이 달린 상품이기 때문에 환불해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환불을 받지 못한 그는 이러한 업체의 조처가 불공정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글로벌 숙박 예약 플랫폼의 ‘환불 불가’ 상품을 두고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법원이 잇달아 업체 손을 들어주면서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환불 불가 약관이 소비자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기는 조항은 아니라는 게 법원 판단이지만, 정부와 소비자단체는 “투숙까지 십수개월이 남았는데도 환불을 해주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8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고법 행정3부(재판장 이상주)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숙박 예약 플랫폼 ‘아고다컴퍼니’(아고다)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아고다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공정위는 2018년 11월 아고다와 네덜란드계 숙박 예약 업체인 ‘부킹닷컴’에 “숙박 예정일까지 남아 있는 기간과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숙박 대금 전액을 위약금으로 부과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과도한 손해배상 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조항”이라며 시정명령을 내렸는데, 법원이 이를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지난해 4월에도 서울고법 행정6부(당시 재판장 이창형)는 부킹닷컴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같은 소송에서 부킹닷컴 승소로 판결한 바 있다.

공정위는 환불 불가로 소비자 피해가 막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법원은 두 사건에서 “환불 불가 조항은 고객에게 부당하게 손해배상 의무를 지우는 약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환불 가능 상품보다 평균 13%가량 저렴한 대신 고객의 ‘노 쇼’에 따른 손해를 막으려는 정당한 상품으로 본 셈이다. 환불 가능 상품이 있는데도 저렴한 상품을 산 것은 고객의 선택이기 때문에 환불 불가 약관이 고객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웠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고객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여러 숙박상품의 가격과 조건을 배교해 자유롭게 숙박예약을 할 수 있다. 환불 불가 상품에 관해 어쩔 수 없이 예약을 체결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환불 불가 상품을 일률적으로 제거하는 경우 고객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와 전체적으로 소비자의 후생도 감소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위는 반발하고 있다. 결제 실수나 불가피한 사정 등으로 환불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 푼도 돌려주지 않는 약관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환불 불가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투숙 기간까지 6개월, 1년 등 상당 기간이 남았는데도 100% 환불이 불가하다는 것은 과하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두 사건 모두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상고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11개 소비자단체도 미국에 본사를 둔 ‘호텔스닷컴’을 상대로 소송허가신청서를 내는 등 환불 불가 약관에 대한 단체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이들 단체는 “소비자가 환불 불가 상품을 이용하면 평균 10% 정도의 이득을 보는데, 환불 불가 상품을 취소하기 위해서는 숙박 대금 100%를 위약금으로 부담해야 한다”며 “소비자가 얻는 이득에 견줘, 손해배상 의무가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소비자원 자료를 보면, 2017년∼2019년 5월까지 접수한 글로벌 숙박·항공 예약대행 사이트 관련 소비자 불만 가운데 ‘취소·환급 지연 및 거부’ 관련 내용이 7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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