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이하 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역사학자들이 과거 다른 이들이 쓴 원고 일부만 수정한 채 독립기념관에 제출했다는 ‘대필’ 의혹과 관련해 독립기념관이 국가보훈처에 감사를 의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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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감사팀 관계자는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가보훈처 감사관실에 외부 감사를 요구했고, 오늘부터 (독립기념관) 자체 감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인명사전 편찬 사업에 참여한 역사학계 전문가 20명이 과거 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 직원이 썼다가 문제가 된 원고에 ‘명의’만 빌려주고, 원고료를 자신이 챙기거나 직원들에게 돌려줬다는 의혹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인명사전 편찬이 일정이 촉박하고, 관련 전공자가 많지 않다는 특수성이 있지만 국가 기념사업인 만큼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부분을 감사를 통해 명확히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역사학계 안팎에선 독립기념관 직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고를 쓴 직원 중 일부는 ‘대필’ 의혹이 제기된 역사학자를 선정하는 작업에 결재권자로서 관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소속 기관의 직원에게 원고료 지급이 불가하다’는 2016년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자신의 원고가 환수됐고, 인명사전에 재등재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대체 집필자’에게 자신의 원고를 맡겼다.
2017~2019년 ‘인명사전팀장’을 맡았던 박아무개(2020년 12월 퇴직)씨, 김아무개(2018년 2월 퇴직)씨, 이아무개·오아무개 연구원은 모두 1건 이상의 원고를 1명 이상의 ‘대체 집필자’에게 청탁했다. 이밖에 계약직 연구원인 김아무개씨를 포함해 현직 연구원 5명도 원고를 청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명사전팀장을 맡았던 박씨로부터 이름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밝힌 홍아무개 순천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한겨레>와 통화에서 “(박씨로부터 이름을 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받은 원고료는 박씨에게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같은 기간 수석연구위원으로서 인명사전팀장들의 보고를 받았던 김아무개 연구원도 여아무개 교수(국민대 교양대학)에게 33건의 원고를 청탁했다. 여 교수는 한국고대사 전공으로 인명사전 집필 기준에 맞지 않는 인사다. 김 연구원은 <한겨레>의 경위 설명 요청에 “더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인명사전 1·2권, 특별판 1·2권에 독립기념관 직원들이 쓴 원고가 활용된 의혹이 있는 만큼 해당 원고를 관련 전공자들이 집필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한 역사학자는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인물들의 생애를 권위 있는 학자들에게 맡기지 않고 독립기념관 직원들이 썼고 이 내용이 다시 활용됐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담은 원고만이라도 원저자들이 실제 관련 전공자인지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고 원고료 부정 수급이 확인되면 환수 조처하고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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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 학자들, 남의 글로 ‘무늬만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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