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이 항소심 공판에서 1심과 달리 ‘혐의를 모두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피해자와 합의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만, 피해자 쪽은 “합의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18일 서울고법 형사9부(재판장 문광섭) 심리로 열린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아무개(41)씨의 첫 항소심 공판에서 정씨 쪽은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해 4월14일 서울시장 비서실 전·현직 직원들과 식사를 한 뒤, 만취한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6개월 이상 치료를 필요로 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입게 한 혐의(준강간치상)로 기소됐다.
정씨는 1심에서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박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때문”이라며 혐의를 일부 부인했으나, 항소심에선 혐의를 모두 인정하되 ‘형이 무겁다’는 취지로 다투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지난 1월 정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이날 재판에서 정씨 쪽 변호인은 “피해자와 합의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 쪽 김재련 변호사는 “(피고인 쪽이) 합의 관련해 의사를 전달해왔는데, 피해자가 현재까지 합의 의사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변호사는 이날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피고인 쪽이 ‘범죄사실을 다 인정하고 1심 내용을 받아들이니까 피해자가 합의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왔다”며 “1심 재판부가 공판을 통해 확인된 내용 토대로 꼼꼼히 판결문을 작성해줘서 (혐의를 일부 부인하던 피고인이) 승복한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정씨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피해자가 오랫동안 신뢰했던 정씨로부터 피해를 본 것에 대한 배신감과 수치감 등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는 (정신과 의사의) 보고서가 있다. 피해자는 이 범행에 대한 직장 내 처리 방식, 허위 소문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을 호소했다”며 “술에 취해 항거 불능 상태의 피해자를 간음해 상해를 입힌 사안으로 죄질이 좋지 않다. 직장 동료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가 사회에 복귀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시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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