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비 절감’을 이유로 관리인력을 줄인 아파트에서 과로와 폭언에 시달리던 경비원이 숨진 사건에 법원이 “업무상 재해”라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경비원 ㄱ씨의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구하는 소송에서 “ㄱ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은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2009년부터 경북 구미시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ㄱ씨는 2018년 9월, 경비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동맥경화증과 관련한 급성심장사로 추정됐다.
법정에 제시된 증거와 증언을 종합하면, ㄱ씨는 2018년 들어 업무량이 늘고 주민의 폭언까지 겹치면서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ㄱ씨가 근무하던 아파트는 당초 관리소장 1명, 경비원 2명이 관리 업무를 담당하던 곳이었는데, 그해 4월 관리비 절감 목적으로 관리소장이 퇴직하게 되면서 관리소장이 맡았던 업무를 ㄱ씨 등 경비원 2명이 떠안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ㄱ씨는 관리소장이 하던 업무인 제초작업과 방역작업, 조경 업무를 맡아서 해야 했다. 2018년 여름 폭염이 잇따랐지만 제초작업은 주차된 차에 돌이 튀지 않도록 기계가 아닌 호미로 작업해야 했고, 방역도 일주일에 두 번씩 10㎏ 장비를 지고 했다. 이 아파트 운영위원장 문아무개씨는 법정에서 “관리소장의 업무가 2명의 경비원에게 절반씩 균등하게 분배되지는 못했다. ㄱ씨는 이 아파트에서 2009년부터 근무했지만 다른 경비원 자리는 자주 교체되는 등의 이유로 업무가 고인에게 더 많이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ㄱ씨가 숨지기 일주일 전 주민으로부터 폭언을 들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아파트 주차면수는 116대인데 등록된 차량이 235대로 주차면수에 견줘 등록차량이 119대나 더 많았다. 이 때문에 늘 주민 간의 주차갈등이 있었고, 경비원으로서 주차관리가 주된 업무였던 ㄱ씨는 이중주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입주민에게 폭언을 들은 것으로 나타났다.
ㄱ씨 유가족으로부터 유족급여 청구를 받은 근로복지공단은 “평소와 달리 ㄱ씨의 작업량이 크게 변동한 사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지급을 거절했지만, 재판부는 ㄱ씨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같은 아파트에서 9년 이상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던 고인이 관리소장 퇴직에 따라 업무가 추가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입주민과 주차갈등을 겪은 후 사망한 것에는 직무의 과중, 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관리소장 퇴직으로 인한 추가 업무부담, 주차관리 과정에서 듣게 된 폭언 등으로 인한 업무상 과로, 스트레스가 고인에게 심장동맥경화를 유발하거나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ㄱ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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