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2018년 9월1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그의 징계처분 취소 소송에도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법조계에서는 비록 1심이기는 하나 그가 유죄판결을 받았고, 대법원 징계위원회가 내린 징계처분을 대법원이 취소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만큼, 징계처분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윤종섭)는 지난 2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민걸 전 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사법농단’ 의혹 관련 사건 가운데 첫 유죄 판결이다.
이에 따라 이민걸 전 실장의 징계처분취소 소송도 속도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앞서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2018년 12월 이민걸 전 실장에게 품위손상과 직무상 의무 위반을, 이규진 전 상임위원에게 품위손상을 이유로 각각 정직 6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린 바 있다. 함께 근무한 박상언 전 심의관(감봉 5개월), 김민수 전 심의관(감봉 4개월), 문성호 전 심의관(견책) 등도 징계처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한 이 전 실장 등은 2019년 1월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징계처분취소 소송을 냈으나 2년 넘게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2년 넘도록 결론을 내지 않는 것은 징계처분취소를 청구한 판사 상당수가 형사재판에 넘겨진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 판단이 이들 형사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선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징계사유는 형사재판 1심에서도 상당 부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 전 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과 함께 상고법원 도입 등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제재하려고 김 전 심의관에게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자 탈퇴 조처’를 공지하게 한 혐의 등을 유죄 판단했다.
이 전 상임위원이 파견 판사에게 헌재 정보를 수집해 문 전 심의관에게 전달하게 한 혐의에 대해선 양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의 공모도 인정했다. 장기 미제 사건 처리가 늦거나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판사에게 ‘지적’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처장이나 임 전 차장이 이 전 상임위원을 거쳐 특정 재판 판사에게 위법·부당한 지적 사항을 전달할 경우 공범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징계처분을 받은 판사 심의관에 대해서도 “재판사무를 담당하는 판사는 누군가로부터 지시를 받는 것에 친해져선 안 된다”고 짚었다.
이 때문에 공모관계에 있는 양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병대 전 처장과 임 전 차장의 형사재판 1심이 진행 중이지만, 소송 당사자인 이 전 실장에 대한 1심 유죄 판결이 나온 만큼 징계처분취소 소송이 뒤집힐 가능성은 작아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전 실장이 지난달 판사 연임을 포기해 법복을 벗었으나, 정직 기간 보수 지급 등 소의 이익이 있어 소송 진행에도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2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통해 해고 효력을 다투던 중 정년에 이르더라도 해고 기간에 임금을 받을 필요가 있다면 소의 이익이 유지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1심 판결이 나온 만큼 징계사유와 겹치는 유죄 판단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서선영 변호사도 “형사재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재판을 계류하는 것은 형사재판에서 확정된 사실관계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대로 적용하는 법리가 있기 때문”이라며 “이 전 실장 사건은 사실관계보단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어서 사실관계에 대한 특별한 다툼이 없다면 양 전 대법원장 사건 선고나 확정판결까지 기다리기엔 재판이 지나치게 늦어져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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