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작은 회사다 보니 인사철마다 난리입니다. 어떤 부서는 일 잘하는 직원이라고 꼭 잡고 내놓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부서는 구성원을 구하지 못해서 발만 구릅니다. 원칙 없는 인사로 직원들도 눈치게임을 하느라 스트레스가 쌓이고 마음의 상처도 입어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제가 그룹 인사담당 부사장으로 8년간 일하면서 한 해도 인사가 어렵지 않았을 때가 없었습니다. 어느 해에는 그룹 전체적으로 아주 중요한 자리에 후임자를 선정하는 데 반년 이상을 고심한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 후보자들을 놓고 수십 차례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심사숙고하고 연말에 최종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도 반드시 결과가 좋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 임원은 기대보다 빨리 그룹 내 다른 자리로 옮겨 가야 했으니까요.
인사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채용, 평가, 보상, 승진, 해임 등 한 개인과 회사의 개별적 고용관계에서부터 조직 구성원의 대표인 노동조합이나 사원협의체와 회사의 집단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또 조직 혁신과 조직 개발까지 포함하면 인사는 영역도 넓지만 복잡성도 대단합니다. 인사가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그 대상인 개인과 업무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모델화하면 한 개인의 성과는 능력, 동기, 그리고 기회라는 세 가지의 곱으로 결정됩니다. 다시 말해, 능력 수준이 높고 동기부여가 잘되고 일할 기회가 주어지면 높은 성과를 냅니다. 그러나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0이면, 곱하기이기 때문에 성과는 0이 됩니다. 무엇보다 ‘능력’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발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동기’ 역시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서 변화합니다. 능력이 크고 동기가 높아도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 성과도 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사적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은 움직이는 과녁입니다. 업무 역시 고정돼 있는 게 아닙니다. 기술 발달과 시장 여건에 따라 과거보다 변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항상 변화하는 개인과 업무를 매칭시키는 인사라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운 인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인사 원칙과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야 합니다. ‘인사철마다 난리’라는 것은 그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경영진의 필요에 따라서 주관적이고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인사권을 행사함으로써 조직 내에 불안과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예측 가능성이 없으면 직원들은 불안해하고 결국 인맥에 의지하려 합니다. 결국 공정성이 무너지고 신뢰가 깨집니다. 그런 조직이 창의성과 생산성이 높을 리가 없습니다. 직원 각자 자신에게도 기회가 생길 것이고,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지니까요.
인사 원칙과 시스템이 없는 회사에서는 특정 직원을 유난히 끼고도는 상사가 생겨납니다. 일 잘한다 싶으면 그 직원을 길게 보고 키우려는 생각보다는 당장 옆에 두고 써먹으려는 태도지요. 혹시 다른 부서에서 꼭 필요하니 달라고 해도 절대로 내놓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부서를 옮기게 되면 데려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 잘하는 직원을 꼭 붙잡아놓는 상사는 하수 중의 하수입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조직도, 개인도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부서장이나 임원들의 경우는 대개 자기 승진과 보상에만 매몰돼 회사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제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조직 내에서 인적 자원의 투입과 배분을 통해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단위 조직 수준이 아니라 회사 조직 전체의 수준에서 최적의 인사가 이루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밑의 직원을 달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두말하지 않고 내놓았습니다. 그 누가 와서 나와 함께 일해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고, 또한 그 누구라도 우리 조직이 뽑은 사람이라면 기본 이상은 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에 들어올 정도의 직원들이라면 기본적으로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얼마나 일에 집중하고 투신해서 주인 정신을 발휘하느냐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내 밑에 있는 사람을 다른 계열사에서 꼭 필요하니 달라고 하면 그 직원이 그곳으로 가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짚어보고 본인 의사를 확인한 뒤에 원한다면 바로 보내주었습니다. 당장은 내가 좀 아쉬울 수 있지만 내가 좀 더 일하고 다른 직원을 키워서 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인화원장으로 있을 때 외국 유학을 갔던 직원이 돌아온 후 그를 다른 큰 계열사로 보내고자 했습니다. 더 큰 조직에서의 경험을 쌓으면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인화원 임원들은 다들 반대했습니다. 우리가 돈 들여서 유학 보내놓고 왜 남 좋은 일을 시키느냐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 유학 비용 자네가 댔나? 계열사에서 냉장고 팔고, 텔레비전 팔아서 그 돈으로 우리에게 교육비를 내준 거 아닌가? 그러니 그 회사에서 더 필요한 인재로 키워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결국 그 직원은 계열사에 가서 나날이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인화원의 든든한 우군이 되었습니다. 인화원은 업무 성격상 각 계열사와 협업할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앞장서서 필요하면 계열사를 설득해서 인화원을 도왔기에 처음에 전출을 반대했던 이들도 나중에는 아주 흡족해했습니다.
인사 시스템이란 무엇일까요. 흔히 인사는 투명하고 공정하며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만 이게 무슨 뜻일까요. 투명하다는 것은 인사 프로세스가 투명하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 회사에서는 인사가 대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조직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개별 인사의 내용은 철저히 비밀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정해야 한다는 것은 인사가 인사 원칙에 맞게 수행된다는 말입니다. 연고나 친소 관계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과 성과, 그리고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측 가능하다는 것은 늘 하던 방식으로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인사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의미합니다.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된다는 신뢰가 있으면 설혹 최종 발표되는 인사 내용이 과거와는 달리 파격적이라고 해도 여전히 그것은 예측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사 시스템의 기본은 인사 원칙입니다. ‘고객가치 창출의 원천은 개인의 창의와 자율이다’ ‘인재는 장기적 관점에서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육성한다’ ‘개인과 부서의 능력과 성과에 따라서 보상한다’ ‘승진은 능력과 리더십에 바탕하고 급여 인상이나 보너스는 성과에 따른다’ ‘노사관계는 파트너십 모델을 기본으로 한다’ 같은 큰 원칙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실무적 레벨에서는 ‘순환 근무는 3년, 해외 근무는 4년을 기준으로 한다’ ‘상위 직급은 고정급과 변동급의 비율을 70:30으로, 하위직은 90:10을 기준으로 한다’ 등이 있겠지요. 물론 예외 상황은 생길 수 있습니다. 인사는 원칙을 지키되 기존의 관행이나 관습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시장 상황이 항상 변하는 만큼 인사도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유연성의 전제 조건은 자기중심성의 확보입니다. 인사 원칙에 단단히 뿌리박고 중심성이 확고해야만 흔들리는 파도에 유연히 대응하면서 자라는 해초와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움직이는 과녁에 관한 깊은 고민이나 경험 없이 상위 직급으로 올라가는 적지 않은 관리자나 경영자들은 부하 직원들을 쉽게 교체 가능한 기계 시스템의 부품으로 보고자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단순하고 빠르고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직은 물리적 결합이나 분해로만 운영되는 게 아닙니다. 사업적 필요에 따라 조직 개편을 했는데 새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땐 대부분 화학적 결합의 중요성이 간과되었기 때문입니다. 조직 개편과 인사적 의사결정이 인사 원칙들에 따라 이루어지는지 늘 점검하고 보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서양의 관점에서 보면 인사란 ‘사람과 일을 매치시키는 것’입니다. 20년간 제너럴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였던 잭 웰치는 인사를 ‘제대로 된 사람(right people)을 뽑아서 이기는 팀(winning team)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동양의 관점으로는 맹자 공손추 편에 나오는 ‘존현사능 준걸재위’(尊賢使能 俊傑在位, 줄여서 任賢使能이라고도 합니다)라고 할 수 있겠지요. ‘현명한 사람을 존중하고 발탁하여 필요한 자리에 임명해 뛰어난 인재들이 모두 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인사입니다. 2천년 전 동양에서부터 21세기 서양에 이르기까지 인사의 본질은 이처럼 똑같습니다. 다음 회에는 어떻게 하면 인사를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