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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 길에선 단 한 사람도 나를 지나치지 않았다

등록 2021-04-17 15:26수정 2021-04-17 15:29

[토요판]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29. 상처 입은 몸들

행복한 몸의 모양 따로 있고
그 몸 되어야 한다고 믿던 때
내 몸 일부 돼버린 미세한 불편
별도리가 없는 안쓰러운 상처

가져본 적 없는 불편 다 아는 양
옳다 그르다 맘껏 재단하는 이들
공존할 줄 모르는 생각이야말로
이 사회 가장 큰 불편함 아닐까

그날 등산로에 주저앉았을 때
한 사람도 그냥 지나치지 않아
상처 알아차리고 보아준 이들
고맙습니다, 당신들 덕분이에요
약할 대로 약해진 발목 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게 전부인가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김비 제공
약할 대로 약해진 발목 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게 전부인가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김비 제공

작년 봄, 한라산에 올랐다가 발목을 크게 다쳤다. 정상까지 오를 생각도 아니었으니 정상까지 가닿지도 못했는데, 내려오다가 고꾸라지고 말았다. 어쩌다 그런 일이 생겼느냐는 물음에 간단히 대답하자면 ‘앞을 제대로 보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그때의 그 사고가 제대로 앞만 바라보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었을까 나는 궁금해진다.

미묘한 불편함 문신처럼 새겨지다

계약된 책 작업 때문에 집을 나섰으니 따지고 보면 그 시작은 먹고사는 일 때문이기도 했고, 우울증이 심했던 신랑이 등산로의 듬성듬성한 나뭇가지 너머로 자꾸 사라져 뒤를 돌아보게 했으니 신랑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일이었다. 조금 더 멀리 가자면 남자가 되기 위해 지독히도 열심히 운동에 매달려야 했던 때, 겹질리고 다시 또 겹질려 퉁퉁 부은 발목을 끌면서도 농구장으로 가야 했던 그 시절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약할 대로 약해진 발목 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게 전부인가 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날 길 위에 나를 내동댕이친 시간에 관해 최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려고 하면, 자꾸 말문이 막힌다. 모호한 존재이기에 나는 누구보다 더욱 명확히 말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더듬거리고 만다. 명쾌한 대답은 진실인가, 나는 간단히 말할 수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항상 너무도 부럽다.

그날 길 위에 나를 내동댕이친 시간에 관해 최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려고 하면, 자꾸 말문이 막힌다. 김비 제공
그날 길 위에 나를 내동댕이친 시간에 관해 최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려고 하면, 자꾸 말문이 막힌다. 김비 제공

당일에 진료를 하고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똑같은 자리에 무수히 여러번 다쳤던 기억은, 다치고서 별 처치 없이 나았던 기억은 알량한 희망이 되어 나를 붙든다. 희망이나 바람도 늙어야 하는 법인데, 젊은 시절의 믿음이 고스란히 지금 현실에도 유효하리라 믿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부기만 빠지면 괜찮아질 거야, 부러진 것 같지는 않으니 한달 정도 쉬면 괜찮을 거야. 그렇지 않아도 이미 고질이었던 내 발목은, 벌써 일년 가까이 미묘한 불편함이 문신처럼 새겨진 채다. 농구를 하다 다쳤던 무릎 수술을 하느라 인대까지 끊어 넘겨야 했던 발목이었으니, 이전에도 이 정도의 불편함은 있었나? 나는 지금의 불편함이 이전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 정말 다르기는 한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늦게나마 침을 맞고 걷는 자세를 교정하며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다치지 않고 온전한 다른 쪽 발목과는 확실히 다른 불편함이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지금은 어쩌지 못하게 되어버린 불편함. 이미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려, 끌어안고 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안쓰러운 내 몸의 불편.

나에게는 그런 몸이 또 한 군데 있다. 내 오른팔은 팔꿈치가 밖으로 많이 휘어졌는데, 나는 왼팔처럼 곧게 뻗은 내 오른팔을 본 적이 없다. 내 기억이 가닿을 수 있는 가장 먼 시간까지, 내 오른팔은 왼팔과 달랐고 왼팔만큼 힘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에는 왼팔을 사용해 왼손으로 글자를 썼는데, 울 엄마 복희씨가 어린 나를 때리고 왼팔을 묶어 놓기까지 하면서 지금처럼 오른팔과 오른손으로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왼팔로 쓰는 글씨와 오른팔로 쓰는 글씨는 다르지 않고 똑같은 일을 해내는 데 다른 몸을 쓰는 것뿐인데, 복희씨는 오른팔로 글을 쓰지 못하면 내 삶에 큰일이라도 생긴다고 믿었고, 학대에 버금가는 일들을 나를 위해 저지르곤 했다. 복희씨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행복한 몸의 모양은 따로 있고, 그 몸이 되기 위해 모두가 필사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던 때. 이 사회가 기준으로 정해놓은 그 몸의 모양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인생을 망치고 미래가 없다고 확신하던 때.

얕은 문지방도 때로는 낭떠러지더라

내가 그런 팔을 가지게 된 건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아기 적이었다고 했다. ‘문지방’에서 떨어졌다고 복희씨는 말했다. 나는 내가 떨어지던 순간을 기억할 리 없으니 복희씨의 말을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하면,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시 묻곤 했다. ‘문지방이라고요?’ 드나드는 문의 입구 바닥에 가로놓인 얕은 나무판자가 떨어지고 자시고 할 만한 높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아궁이가 있고, 아궁이 위로 단을 올려 방바닥을 지은 옛날 집. 문을 열면 문지방 너머에 어른 허벅지 높이의 단 차가 있었으니, 멋모르고 기던 내가 그 바깥으로 고꾸라져 떨어졌던 거라고 복희씨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넘어서고 말 것도 없는 얕은 문지방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된다.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상처가 된다.

멀리서 본 한라산. 그림 박조건형
멀리서 본 한라산. 그림 박조건형

우는 아기를 일으켜 몸을 만져보았겠지만, 두부처럼 말랑한 몸에 어디가 어떻게 뒤틀렸는지 어린 복희씨는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당장에 병원으로 뛰어가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뼈를 맞추면 될 일을, 복희씨는 한의원에서 침 몇번 맞히고는 그만이었다고 했다. 애 키우는 일을 여자의 일로만 믿고 살던 그 시절, 내 부친 역시 복희씨 탓만 했을 것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

그렇게 바깥으로 휘어진 오른팔은, 내 것이 되었다. 나이가 들고 더 크기 전에 다시 병원에 가 뼈를 맞출 수도 있었으련만, 그러기엔 복희씨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넉넉하지 못했던 우리 가계의 사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칠십이 훨씬 넘은 복희씨는 아직도 내 팔을 볼 때마다 탄식한다. 못 배우고 무식한 어미를 만난 탓에 네가 이렇게 되고 말았지, 이제는 펴질 리 없는 내 오른팔을 쓰다듬으며 오래도록 자책한다.

나에게는 그런 몸이 또 하나 있다. 성확정 수술을 두고 이제는 여러가지 증언이나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한 영상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나는 자주 그러한 기록들이 충분한가 되묻곤 한다. 울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카메라 앞에서 억지 눈물을 쏟으며 그 시절을 토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청승맞고 힘겨웠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 시대의 억압에 다시 또 우리의 삶을 억지로 끼워 맞추느라 나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오류를 반복해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묻고 싶을 뿐이다.

타고난 나의 몸이 무슨 이유로 불편함이 되었는지 물론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는 그 몸이, 어쩌다가 나에게는 그런 몸이 되어버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오십이 넘은 지금에도 여전히 내 몸의 불편함을 제대로 헤아릴 줄 모르고, 기억 너머 나에게 들러붙은 불운이 어쩌다가 그렇게 되어버렸는지 가늠하는 일조차 불가능한 것이 당연한데, 지금도 사람들은 내 삶의 상처를 말할 때 추궁하듯 묻는다. 제대로 알려고 해본 적도 없으면서, 폭력적으로 갈음한다. 너무 쉽게 단정한다.

그때 내가 받은 수술을, 나는 소설 한 편으로 기록해 놓았다. 그 첫 문장은 ‘나의 삶은 훼손되었다’였다. 나의 몸이 아니라, 나의 성별이 아니라, 나의 삶이 훼손되었다고 나는 제일 처음 적었다. 이 사회는 단순히 나를, 성별을 바꾼 사람, 여자가 된 남자,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사는 사람 등으로 묘사하지만, 오십 평생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어떤 수사도 내 삶을 적절하게 설명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 어떤 표현도 여기에 있는 나와 한참이나 어긋났다.

여전히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기준으로만 판단하고 적을 뿐이었지만, 나는 내 삶의 ‘훼손’에 관해 맨 처음 적었다. 훼손된 삶 앞에 섰을 때, 하필 내 삶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궁지에 몰렸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을 때, 생존을 위한 당신의 본능은 어디까지 가닿을 수 있는가?

나는 내게 온 상처들과, 상처 입은 몸으로 또 하루를 살아내며, 그 시간을 상상해 본다.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나는 괜찮을 것이다. 김비 제공
나는 내게 온 상처들과, 상처 입은 몸으로 또 하루를 살아내며, 그 시간을 상상해 본다.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나는 괜찮을 것이다. 김비 제공

고맙게도 우린 같은 길 위에 있었네

나는 내가 원치도 않게 망가져 버린 내 삶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가장 최선의 선택을 했고, 지금 그 행복 속에 있다. 아주 작고 사소하지만, 온 힘을 다해 내가 얻은 한 모금의 생을 나는 비로소 마음껏 누리고 있다. 이 사회는 상상해본 적 없는 어떤 성취를, 훼손되어본 적 없는 삶들은 감히 가늠할 수도 없는 어떤 자유를.

그러나 나는 내 몸이 지닌 상처를 안다. 수술을 했지만 내가 여성이 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가닿고자 하는 온전함으로부터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굳이 당신들이 손가락질하지 않아도, 제일 먼저 아는 사람은 ‘나’일 수밖에 없다.

수술한 자리에 손가락을 넣어보면 쉽게 만져지는 내 몸속의 벽, 자꾸 좁아지는 벽.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꿰맨 자국. 가지런히 몸의 움직임에 휩쓸려 자라지 않고 이리저리 뒤엉켜 자라난 체모들. 잘려나간 끄트머리가 느껴지는 어떤 배설들. 상처 입은 몸 앞에 우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채 살아낸 몸이란 실재할 수 있는 걸까? 생존이란 어떤 것에도 상처 입지 않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상처를 극복하는 일. 쓰러진 자신을 일으키고, 다시 또 일으키는 일. 회복을 위해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일, 애를 쓰는 일. 그렇다면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린 모두 상처 입은 스스로인데, 상처를 아는 서로인데, 왜 이토록 잔인해지고 있는 걸까? 배설하듯 잔혹해지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어버린 걸까?

다랑쉬오름 올라가는 길. 그림 박조건형
다랑쉬오름 올라가는 길. 그림 박조건형

그날 퉁퉁 부은 발목을 움켜쥐고 등산로에 주저앉아 있을 때, 산을 오르던 사람, 산을 내려오던 사람, 단 한 사람도 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자신이 메고 있던 가방에서 파스를 꺼내 내밀고, 괜찮으신 거냐고 묻고, 1㎞ 남짓 떨어진 대피소에서 직접 붕대를 가져와 발목에 감아주고 다시 내려간 분도 있었다. 또 다른 분은 구조용 모노레일을 직접 불러주셨고, 기다리면 곧 나무들 사이로 모노레일이 도착할 거라고 알려주셨다. 알고 보니 그는 우리가 올라갈 때 등산로를 보수하던 직원분이셨고, ‘더운데 수고 많으시네요’ 내가 건넨 인사를 들었던 바로 그분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성별인지 어떤 정체성을 가졌는지는 상관없었다. 그들은 나의 상처를 아는 사람들이었고, 언젠가 나처럼 주저앉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며, 똑같은 산을 올라가거나 올라갔거나 올랐던 사람들일 것이다. 고맙게도 우린 같은 길 위에 있었다.

이제 이십년이 남았을까, 삼십년일까? 다시 또 내 삶에는 어떤 상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내게 온 상처들과, 상처 입은 몸으로 또 하루를 살아내며, 그 시간을 상상해 본다.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나는 괜찮을 것이다. 상처 입었거나 상처 입게 되거나, 우린 같은 길 위에서 주저앉거나 휘어진 몸으로 만날 테니 말이다. 여기 이 몇 글자의 기록은 나도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이유가 될 테니 말이다. 고맙게도, 당신들 덕분이다.

▶ 김비. 소설가. 에세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이 있으며, 배구선수 ‘김연경’처럼 모두에게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0년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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