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공수처장이 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유보부 이첩’ 조항 등이 담긴 사건사무규칙을 제정하면서 수사기관 사이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앞으로 사건 이첩 등 수사 실무 과정에서 공수처와 검찰 사이의 혼선과 갈등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검찰청은 4일 공표된 공수처의 사건사무규칙에 검찰과 갈등을 빚어온 ‘공소권 유보부 이첩’ 등의 내용이 담기자 즉각 반발했다. 공소권 유보부 이첩은 공수처가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사건의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공소권은 유보한 채 수사권만 다른 수사기관에 이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대검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은 법적 근거 없이 새로운 형사 절차를 창설하는 것으로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형사사법체계와도 상충될 소지가 크다”고 비판했다. 대검은 또한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내부 규칙인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에 국민의 권리, 의무 또는 다른 국가기관의 직무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을 규정한 것은 헌법과 법령 체계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무상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검은 사법 경찰관이 검사 등 고위공직자범죄를 수사할 경우 체포·구속·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를 위한 영장을 검찰이 아닌 공수처에 신청하도록 규정한 것에 대해서도 “형사소송법과 정면으로 상충할 뿐만 아니라, 사건 관계인들의 방어권에도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공수처도 입장문을 내어 대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공수처는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은 공수처법 제45조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대통령령에 준하는 효력이 있다”고 밝혔다. 비위 검사와 관련해 사법경찰관이 공수처에 영장을 신청하는 내용의 규칙이 형사소송법과 충돌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방지하기 위해 공수처에 검사에 대한 공소권이 부여됐다”며 “대검의 주장은 검사 비위에 대해 검찰에 영장을 신청하라는 뜻으로 검사 비위 견제라는 공수처법에 반한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수사기관의 힘겨루기로 앞으로 수사 및 사건 이첩 과정에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편에서는 공수처가 사건사무규칙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검·경 협의를 통해 잡음을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는 논란이 된 공소권 유보부 이첩 문제를 두고 검·경과 관련 회의를 단 한 차례만 연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3월29일 공수처와 검·경 실무진들은 ‘공수처법 관련 관계기관 실무협의회’를 열어 논란이 된 공소권 유보부 이첩을 논의한 뒤, 추가 회의를 열지 않은 것이다. 당시 공수처 쪽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으나, 사실상 이 회의 한 번이 전부였다. 대검 관계자는 “당시 회의에서도 각 기관의 입장만 얘기했지, 의견을 모은 내용은 없었다”며 “사건사무규칙도 공수처에서 전달받은 것이 없다. 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말했다.
공수처가 이날 ‘사건사무규칙의 해석 적용과 관련된 혼선’을 해결하겠다며 밝힌 별도의 ‘수사기관 협의체’도 공수처의 일방적 계획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수처는 사건사무규칙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공수처 수석부장, 대검 기획조정부장, 경찰청 수사국장 등으로 꾸려진 협의체에서 관련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밝혔지만, ‘협의체 구성을 제안받은 바가 없다’는 게 대검 쪽 주장이다.
공수처의 ‘사건 이첩 요구권’을 둘러싼 의견 수렴 과정도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법 24조1항에는 “공수처의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수사에 대하여 공수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춰 공수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고 돼 있다. 다른 수사기관이 반발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수처는 지난달 7일, 검찰과 경찰, 해경, 군검찰 등에 공문을 보내 이 조항에 대한 의견을 4월14일까지 모으겠다고 한 뒤, 추가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공수처 관계자는 “개별 수사기관 입장에선 협의 과정이 적었다고 느꼈을 수 있다”면서도 “공수처로서는 사건사무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기관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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