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사람의 보험 가입을 제한한 손해보험사들 행위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2곳의 손해보험사 대표에게 ‘장애인 보험 차별 개선가이드라인(2012년 인권위 발표)’을 참고해 불안장애 치료 이력이 있는 사람의 상해·질병보험 가입 시 구체적 사정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가입 시기·범위를 제한하지 않도록 보험 인수기준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고 9일 밝혔다.
진정인은 2020년 3월 2곳의 손해보험사에서 상해·질병보험 가입을 문의했는데 보험 가입이 어렵거나, 일부 보험만 가입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인권위에 차별 시정을 진정했다. 진정인은 2018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불안장애 치료를 위해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약 복용을 중단한 지 6개월이 지나 손해보험사에서 문을 두드렸는데 ㄱ손해보험사는 “치료를 끝내고 1년이 지나야 가능하다”며 제한을 뒀고, ㄴ손해보험사는 “암 보험만 가입할 수 있다. 치료 내용, 완치 여부 등기 기재된 객관적 자료를 제출하면 인수 여부를 재심사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에 진정인은 “(불안장애) 질환 자체가 일반인과 비교해 사망이나 질병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질환도 아니고 자살이나 심각한 우울증과 관련한 질환도 아니다”며 “불안장애와 관련한 약을 먹었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을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손해보험사들은 “보험계약 청약에 대한 승낙이나 거절은 법률에 근거하는 보험회사의 고유 권한이다. 선의의 고객을 보호하고 손해를 방지하는 등 건전 경영을 위한 정당한 활동이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인권위는 의료계 의견 등을 참고해 검토한 결과 손해보험사들이 불안장애와 상해 발생률 간 구체적 연관성을 제시하지 못한다며 이들의 행위가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의학적 근거나 검증된 통계자료 등 객관적 근거 없이 불안장애 치료 이력을 이유로 보험 가입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재화·용역의 공급·이용과 관련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밝혔다. ㄱ손해보험사의 ‘가입제한 기간 1년’ 역시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게 인권위의 지적이다. 인권위는 또 “불안장애는 치료율이 높지 않아 실제 증상이 있어도 병원에 가지 않은 경우는 보험 가입이 가능하고, 적극 치료해 위험을 낮추면 가입이 안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며 손해보험사의 보험 가입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