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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통보 드려요^^” 해고문자 달랑 한통…또 거리에 선 경비원

등록 2021-05-12 17:12수정 2021-05-13 08:05

서울 노원구 ㅈ아파트 경비노동자 16명 집단해고
용역업체 ‘벼락 해고’에 노동자들 매일 항의 집회
전문가 “입주민, 경비노동자 사용자성 인정이 핵심”
서울 노원구 ㅈ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새 용역업체로부터 받은 ‘해고’ 문자. 경비노동자 제공
서울 노원구 ㅈ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새 용역업체로부터 받은 ‘해고’ 문자. 경비노동자 제공

지난 4월29일 새벽 6시, 서울시 노원구 ㅈ아파트 경비원 노아무개씨는 새 경비용역업체인 ㅎ사로부터 문자 한통을 받았다. “애석하게도 같이 근무할 수 없음을 통보드립니다~^^” 계약갱신 이틀을 앞두고 온 문자로 ‘해고’ 통보였다. 노씨는 이 아파트에서 1∼3개월씩 외부 용역업체와 초단기 계약을 맺으며 2년 반가량을 일해왔다. 1년 전인 지난해 4월 용역업체가 바뀔 때도 고용 승계가 이뤄졌고, ㅎ사가 최근 유니폼 치수까지 새로 재갔던 터라 노씨는 이번에도 고용 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하루아침에 문자 한 통으로 직장을 잃게 된 경비원은 노씨를 비롯해 총 16명이다. 이들은 용역업체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자신이 ‘잘린’ 이유를 물었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 업체와 입주자대표회의 쪽이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노씨를 비롯한 일부 경비원들은 해고 뒤 매일 이 아파트로 나와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노씨는 “미리 해고를 통보하거나 다른 데로 알아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대책 없이 사람을 자르니까 너무 억울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파트 관리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경비원이 집단 해고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아파트 쪽과 새로 경비업무 위수탁 계약을 맺은 업체가 이전 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고용승계할 의무가 없어, 새 업체가 들어서는 1~2년마다 경비원 대량해고가 벌어지는 것이다. 경비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는 입주자대표회의지만 법적 사용자는 용역업체로 돼 있는 모순 탓에 대량해고가 도돌이표처럼 벌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용역업체가 바뀔 때의 고용승계에 관해 법원은 엄격하게 해석해왔다. 위탁업체 간에 ‘근로관계를 승계한다’는 별도의 약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근로관계의 승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2000년 대법원은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경비원 11명 대량해고 사건에서, 새 업체는 아파트 경비업무를 넘겨받았을 뿐 기존 업체로부터 ‘영업을 양수한다’고 약정한 게 아니기 때문에 기존 업체의 경비노동자 고용을 승계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영업을 넘겨받은 경우라면 원칙적으로 근로관계도 포괄적으로 승계되는데, 그런 약정이 없다면 새 업체가 고용을 이어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새 용역업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나타났다.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고용승계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는지는 새 용역업체가 기존 근로자에 대한 고용을 승계하기로 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지”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고용승계 약정’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을 갖춘 위수탁 계약은 흔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경비원 대량해고가 반복되는 걸 막기 위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외부에 아파트 관리를 위탁한 경우, 경비노동자는 용역업체에 소속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노동자를 지휘·감독하며 고용 및 해고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입주자대표회의의 사용자성을 인정한다면 경비원의 고용 안정성이 보다 강화될 거란 분석도 나온다.

김상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경비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실제 이익을 얻고 있는 입주자대표회의를 이들의 사용자로 인정하는 데 있다”며 “이렇게 되면 업체변경을 이유로 한 경비노동자에 대한 해고문제는 적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입주자대표회의가 경비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경비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내용을 용역업체와의 위수탁계약의 조건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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