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에 참석한 다음 날 출근길에 숙취 운전 사고를 내고 숨졌다면 업무상 재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근로복지공단이 이 사고로 숨진 ㄱ씨 가족에게 ‘ㄱ씨의 사고는 업무상 재해가 아니다’라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거절한 것은 부적법하다고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리조트 조리사였던 ㄱ씨는 지난해 6월, 직장상사의 제안으로 밤 10시50분까지 회식을 했다. 과음한 ㄱ씨는 다음날 새벽 5시 출근 시간까지 일어나지 못했고, 상급자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깬 뒤 차를 몰고 근무지로 향하는 길에 가로수 등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숨졌다. 사고 당시 ㄱ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7%였고, 제한속도 시속 70㎞인 도로에서 151㎞로 운전하다 미끄러져 사고가 났다고 수사기관은 분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ㄱ씨가 음주 및 과속운전에 따른 범죄행위로 숨졌다며 “업무상 재해가 아니다”라고 봤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 사건 재판부는 “근로자가 형사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법 위반 행위를 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그 위반행위와 업무 관련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채용된 지 70여일에 불과한 ㄱ씨가 직장상사의 회식 제안을 거절하긴 어려웠을 거라고 봤다. ㄱ씨의 과속운전도 숙취로 늦잠을 잔 뒤 최대한 근무지에 빨리 도착하려다 낸 사고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가 오로지 고인의 과실로 발생했다고 해도 출근하는 과정에서 발생했고, 고인이 일한 주방에서의 지위, 음주·과속 운전 경위를 고려할 때 고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고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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