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참사 5주기 추모주간 기자회견 및 추모 조형물 제막식이 24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에서 열려 한 참석자가 사고현장에서 추모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저와 동갑이었던 구의역 김군의 이야기를 뉴스로 접하며 마음 아파했던 제가 5년 뒤 같은 이유로 친구를 잃고 이 자리에 나왔어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앞에 선 김벼리(23)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지난달 평택항 부두에서 300㎏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이선호(23)씨의 친구다.
매년 5월 마지막 주가 되면 구의역 9-4 승강장에는 흰 국화꽃이 놓인다. 지난 2016년 5월 28일 이곳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19살 김군’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두고 가는 꽃이다. 김군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5년이 되었지만, 24일 이곳을 찾아 헌화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 이선호씨를 비롯해 노동자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일이 최근까지 반복된 탓이다.
이날 공공운수노조 등이 구의역에서 연 ‘구의역 참사 5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과 헌화식에는 서울교통공사노조 조합원들을 비롯해, 산재로 동료·친지를 잃은 이들이 참석해 김군을 추모했다.
참가자들은 계속되는 사망 사고에도 바뀌지 않는 노동현장의 현실을 고발했다. 김대훈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은 “5년 전 구의역 사고를 통해 위험의 외주화와 비정규직 문제가 정면으로 드러났지만 아직 갈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며 “지금도 하루 평균 6, 7명, 해마다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벼리씨는 “김군도, 선호도 너무나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죽었다. 만약 사고일에 안전교육이 있었다면, 컨테이너 불량을 점검했다면, (현장에) 안전관리책임자나 신호수만 있었다면 선호는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선호의 일이 알려진 뒤 수많은 정치인이 빈소를 찾았고, 대선후보라 불리는 사람들은 앞다퉈 선호의 이름을 불러 미안하다고 했다”며 “제발 정부와 국회는 (말로만이 아니라) 산업재해 문제를 무겁게 생각해달라”고 촉구했다.
구의역 참사 5주기 추모주간 기자회견 및 추모 조형물 제막식이 24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에서 열려 `일하며 살고 싶다, 살아서 일하고 싶다'가 새겨진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지난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김용균씨의 동료 정세일(34)씨는 김군과 김용균씨의 죽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위험의 외주화’를 고발했다. 정씨는 “(석탄취급설비에서의) 2인1조 근무는 여전히 여러 부서에 도입되지 않고 있고, 하청업체에서는 원청 대비 안전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부·여당이 두번이나 약속했던 (발전소 운영사의) 직접고용 역시 이행되지 않아 직원들은 3개월씩 (계약을 갱신하며) ‘알바노동’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참석자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들이 실효성 있게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해철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소규모 사업장과 외주·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등은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됐고, 기업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누더기가 된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도록 촉구해나갈 것이다. 또 안전을 뒷전으로 한 공공기관 인력감축과 외주화를 철회하고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 이어 구의역 9-4 정거장 스크린도어 맞은편 벽면에 김군을 추모하는 조형물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가졌다. 조형물에는 “일하며 살고 싶다, 살아서 일하고 싶다”라는 문구가 적혔다. 공공운수노조는 오는 29일까지를 ‘생명안전주간’으로 정하고 비정규직·하청 노동자 등의 산업재해 예방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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