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10만행동 국민동의청원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재구 기자.
“‘평범’을 빼앗김으로써 다른 의미로 ‘비범’한 인간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져보지 못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인 이주민, 성 소수자, 비정규직, 장애인, 저학력, 청소년, 여성들입니다.” (동아제약 채용 성차별 피해자 ㄱ씨)
차별금지법제정연대(제정연대)는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부터 차별금지법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청원글은 지난해 11월 동아제약 신입사원 면접 당시 성차별 질문을 받은 ㄱ씨가 작성했다. ㄱ씨는 청원 글에서 “모든 권력은 상대적이기에 나 또한 언제든 약자, 즉 배척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우리에게 평범을 앗아간 국회는 직무유기를 멈추고 이제 답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바로 지금이다”고 밝혔다. 국회 입법청원은 30일 안에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국회 소관위원회에서 해당 청원을 심사해야 한다.
제정연대는 차별행위를 상세하게 판단할 기준을 만들고 실효성 있는 구제책을 위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남녀고용평등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은 사유가 한정돼 복잡한 차별의 문제를 다루지 못한다”며 “현재 소송법에선 차별 피해자가 상대방의 차별의도를 입증해야 하고 소송제기로 인한 불이익을 구제받기 어렵다. 이는 차별을 당해 고통을 호소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호소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정부가 처음으로 발의를 진행한 뒤 20대 국회를 제외한 모든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21대 국회에선 지난해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현재 법사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용모 등 신체조건, 성적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이뤄지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는 국회를 비판하며, 지금 당장 법안 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 행복할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누군가의 동의 문제가 아니다”며 “차별철폐는 존재에 대한 인정이며 존재의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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