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던 박진성 시인이 폭로자 ㄱ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반면 법원은 박씨가 “무고 범죄자”라며 ㄱ씨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한 행위 등은 위법하다며 1100만원을 ㄱ씨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청주지법 영동지원 민사단독 노승욱 판사는 박씨가 ㄱ씨를 상대로 ‘허위사실 적시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취지로 제기한 소송에서 지난 21일 원고 패소 판결했다. ㄱ씨는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이어지던 2016년 10월 에스엔에스(SNS)에 “미성년자였던 저는 나이가 20살 많은 시인에게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는 글을 올렸다.
재판부는 ㄱ씨가 올린 피해 내용이 “대체로 사실과 부합한다”고 봤다. ㄱ씨는 에스엔에스에 ‘(박씨가) 사귀자는 식으로 말해 거절했지만 (그가) 나이 차이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교복 입은 사진을 보내라고 해 보냈다’는 등의 내용을 올렸다. 재판부는 카카오톡 대화 등을 보면 “(피해자가 올린)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할 뿐 아니라 대체로 사실과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ㄱ씨가 금전을 요구하려고 글을 올렸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박씨가 상담치료 비용 등을 주겠다고 했지만 답장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하면 ㄱ씨가 돈을 요구하려고 글을 올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답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성희롱 피해를 당한 경우 어떤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거나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피해자다움’이 부족하다고 해서 피해자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반면 재판부는 ㄱ씨가 제기한 반소(맞소송)에서 ㄱ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박씨가 보낸 일부) 카카오톡 메시지는 사회 통념상 일상생활에서 허용되는 단순한 농담, 호의적 언동을 넘어 ㄱ씨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며 1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박씨가 ㄱ씨 이름과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한 것도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행위”라며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ㄱ씨의 법률대리인인 이은의 변호사는 “(이 소송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취약한 피해자에게 어떤 2차 가해까지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로, 여성 문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 소송 비용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한겨레>가 입장을 묻자 “마음대로 쓰시라”고 짧게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후 블로그를 통해 “(1심 판결은) 궁예의 관심법 판결”이라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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