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민씨 사건 관련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1일,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사건 발생 현장 인근에 손 씨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실종된 뒤 숨진 채 발견된 손정민(22)씨 사건 경찰 수사가 한 달 넘게 장기화하는 가운데, 온라인에서 사건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과 이를 반박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서로에 대한 비방을 넘어 고소·고발전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유튜버들은 의혹 제기 영상으로 수익을 올리고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경찰이 손씨의 죽음과 관련해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반박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기반한 글과 영상은 온라인 공간에 넘쳐난다. 1일 <한겨레>가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유튜브 채널 등을 살펴보니, “(CCTV 영상에 찍힌) 토끼굴을 입장한 남성 ㄱ씨와 퇴장한 남성은 서로 다른 사람으로, 손씨 사건에 조력자가 있다”는 새로운 의혹이 담긴 영상과 글이 속속 올라와 있었다. 손씨 실종 당시 함께 술을 먹었던 친구 ㄱ씨의 타살설을 제기하며 ‘조력자가 있다’는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것이다.
손씨의 타살 가능성이 작다고 방송한 <서울방송>(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를 반박하며 방송국이 친구 ㄱ씨와 유착돼 있다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ㄱ씨 쪽을 대리하는 변호인과 에스비에스 기자가 형제이기 때문에 ㄱ씨에게 유리한 방송이 나왔다”는 주장이 담긴 영상과, 이 영상을 갈무리한 사진이 온라인 공간에 퍼졌다. 이에 ㄱ씨 변호인은 이같은 내용이 “사실무근이다”며 1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해당 영상을 제작한 유튜버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손씨 타살설을 주장하는 ‘반포한강사건 진실을 찾는 사람들(반진사)’ 등의 커뮤니티와 반대로 이들을 비난하는 누리꾼들은 각각 손씨 유족이나 ㄱ씨 쪽을 비방하는 게시글 및 영상, 댓글을 수집해 양쪽에 “명예훼손 등에 따른 형사 고소용 자료로 보내주자”는 공방을 온라인에서 벌이고 있기도 하다.
ㄱ씨 쪽 정병원 변호사가 고소한 유튜버의 영상 갈무리. 현재 영상은 삭제된 상태다.
이러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일부 유튜버들은 금전적 수익을 올리거나 구독자 수가 증가하는 등 ‘특수’를 누리고 있다. ‘사이버 레커’(이슈가 터졌을 때 실시간으로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를 올리는 유튜버)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지난달 12일부터 손씨 사건에 대한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유튜버ㄴ은 바로 다음 날부터 구독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유튜버 수익계산기 ‘플레이보드’와 ‘녹스인플루언서’ 통계를 보면 ㄴ은 그 전까지는 유입되는 구독자 수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매일 손씨 관련 영상을 올리면서 하루에만 구독자 수가 최대 1만6천명까지 오르는 날도 있었다. ㄴ은 실시간으로 영상을 찍어 후원금을 받는 ‘슈퍼챗’을 통해 보름간 약 4300만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후원계좌를 통한 모금액과 광고수익을 포함하면 그 액수는 더욱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유튜버 ㄷ도 지난달 7일 처음 손씨 관련 방송을 시작한 뒤, 구독자 수와 유튜브 수익이 급증했다. ㄷ은 거의 매일 손씨 관련 영상을 올리며 “ㄱ씨가 손씨를 마취시켜 한강에 유기한 것 아니냐” “ㄱ씨와 함께 손씨를 익사시킨 공범이 3명 더 있고, 손씨 시신을 끌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있는데 경찰이 이를 방조했다” 등의 근거가 불확실한 의혹을 확산시켰다. 그가 약 3주간 끌어올린 구독자 수는 8만2천여명이다. 유튜브 월수익 예측치는 1992만원∼3400만원 사이로 추정된다.
고소 자료를 모으는 누리꾼들을 위한 공지문 갈무리
수사·공공기관에 대한 불신…‘확증 편향’ 강화
사건 발생 뒤 한 달이 넘도록 허위사실 유포가 지속되고,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사이버레커들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적 기관에 대한 불신은 깊어진 가운데, 1인 미디어가 급부상하면서 심화되는 현상이라고 짚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사기관뿐 아니라, 국가나 공공기관의 발표 정책에 대산 신뢰가 낮은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이 가운데 과거에는 언론이 뉴스 분석을 했는데, 1인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댓글 등으로 음모론까지 확산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집단화할 수 있는 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이버 레커들이 이 장에서 주목받기 위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동규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유사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서로 모이고, 정보를 교류하며 집단화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유튜브들은 굉장히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조회수가 늘고 수익이 높아지는 쪽으로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집단화된 사람들은 다른 주장이나 반박이 들어와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심해진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처음부터 유튜브 등을 통해 가짜뉴스로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그런 허위 정보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 사건의 음모론은 사건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이유에는 ‘권력’이 있다는 것 등인데, 결국 음모론을 반박하는 정보가 들어와도 ‘권력 때문에 사건이 은폐된다’고 생각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반포한강사건 진실을 찾는 사람들’ 주최로 고 손정민씨 사건 CCTV 원본 공개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장예지 김윤주 기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