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한겨레> 자료 사진
수천만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대법원 판결로 2심 재판을 다시받게 됐다. 검사가 재판 전에 증인을 만나 면담하는 과정에 회유나 압박이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다만 성접대 뇌물 혐의는 공소시효가 만료 돼 처벌이 어렵다는 이유로 끝내 면소 판결이 확정됐다. 면소 판결이란 사건의 실체에 대한 직접적인 판단 없이 소송을 마무리하는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에게 징역 2년6개월과 벌금 500만원, 추징금 4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 전 차관은 2006∼2008년 건설업자 윤중천씨에게 1억3천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2006∼2007년에는 원주 별장과 오피스텔 등에서 13차례 성접대를 받은 혐의도 있다. 그는 또한 2003∼2011년 사업가 최아무개씨로부터 4900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김 전 차관에게 면소 또는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최씨로부터 받은 4900만원 가운데 4300만원은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6개월에 벌금500만원, 추징금 43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006~2008년 건설업자 윤중천씨에게 3천여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고 강원도 원주시 별장 등에서 13차례에 걸쳐 성접대를 받은 혐의 등은 1심과 마찬가지로 공소시효가 지나 죄를 물을 수 없다며 면소 판결했다.
대법원은 최씨가 재판 전에 검사를 만난 뒤 법정에서 진술을 변경한 점을 문제로 삼았다. 검사가 최씨를 회유·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2심은 최씨 진술을 바탕으로 김 전 차관의 뇌물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재판에서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할 사람을 특별한 사정 없이 소환해 면담하고 증인이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경우, 검사가 증인을 회유나 압박, 답변 유도나 암시 등으로 법정진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 담보돼야 그의 법정진술을 믿을 수 있다”며 “검사가 일방적으로 증인을 사전 면담함으로써 그가 법정에서 왜곡된 진술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증인에 대한 회유나 압박 등이 없었다는 점은 검사가 법정진술이나 면담과정을 기록한 자료를 통해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검사는 1,2심 증인신문 전에 최씨를 소환해 면담했다”며 “면담 직후 최씨는 증인신문에서 종전 진술을 번복했고 김 전 차관에게 불리한 진술을 구체적으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가 검찰에 소환돼 면담하는 과정에서 회유나 압박, 답변 유도나 암시 등 영향을 받아 진술을 변경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검사가 이같은 의문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최씨의 법정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날 김 전 차관의 성접대 등 뇌물 혐의는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면소 판결한 1, 2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검사의 증인 사전면담 뒤 이뤄진 증언의 신빙성을 평가하고 판단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검사의 일방적인 증인사전면담을 규제하는 기틀을 마련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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